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작은 화분에 심어 눈으로 자연의 웅장함을 즐기는 분재(盆栽)는 화초나 나무를 화분에 심어 가꾸는 원예기술을 총칭하는 말이다.
특히, 소나무나 철쭉나무, 단풍나무 등 나무를 화분의 크기에 맞게 작게 축소하면서도 고목다운 운치를 풍겨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원예를 넘어 예술로 인정받기도 한다.

분재시장을 주름잡는 일본을 맹추격하며 우리나라 분재의 고유한 특성과 매력을 대를 이어 지켜가고 있는 젊은 청년농업인이 있다. 걸어온 길 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은 류호인(32) 행복꽃농원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편집자주

최근엔 다육식물이나 공기정화식물 등 다양한 식물들이 반려식물로 각광받으면서 각박한 도시생활의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경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따졌을 때 반려식물로 오래동안 우리 곁을 지킨 것은 바로 분재(盆栽)를 꼽을 수 있다.

분재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를 분에 심어 가꾸어 즐기는 행위 및 그와 관련된 원예기술'인데 단순히 씨앗이나 모종을 사서 심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자생하던 고목을 집 안으로 들임으로써 웅장한 느낌과 예술적인 아름다움까지 담아내는 종합예술의 성격을 띈다는 점이 여타 식물과는 다른 행보다.
역사도 매우 깊은데 중국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분재는 당나라 시절부터 무덤의 벽화에 분재가 그려져있음이 확인되면서 이미 600년대 말부터 분재문화가 성행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아쉽게도 한국의 경우 고려 이전, 즉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까지는 남아있는 기록이 전혀 없어 추측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중국에서 시작된 분재문화가 한국에 건너와 일본의 현해탄까지 건너갔을 것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중론이다.

가장 늦게 분재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이 분재문화의 꽃을 피워낸 것은 자뭇 질투가 날 일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의 분재문화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우리만의 색깔을 담은 분재를 육성하려는 움직임이 전북 정읍에서 분주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류호인 대표는 '행복꽃농원'이라는 이름을 걸고 아버지 류대삼씨의 뜻을 이어 분재수를 상품화 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류 대표의 아버지는 50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우리나라 분재 1세대로 불리며 끊임없는 생산과 연구를 이어왔다.

한국분재조합 임원이었던 아버지는 일본 연수를 다녀온 후 2대, 3대에 걸쳐 꿋꿋하게 분재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일본의 장인들에게 매료됐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아들인 류 대표에게 함께 가업을 이어보는 것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류 대표에게 분재사업은 평생을 부모님 곁에서 지켜봐온 일이어서 대를 잇는 일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단다.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때에 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고 망설임 없이 아버지를 돕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갈고 닦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 류 대표는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진학, 학업과 실습을 병행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사회초년생에겐 운전도 쉽지 않았다. 구불구불 논두렁을 초보 운전자가 능히 해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분재사업을 이끌기 위한 기초훈련이라 생각하고 농사일을 도와주시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안전운전 했다.

고되기만 했다고, 기술을 배운게 맞나 졸업을 앞두고는 그런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확신한다. 그 때의 경험이 지금 분재수를 육성하는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
경지에 오른 아버지의 생산기술을 토대로 졸업 후 본격적으로 협업에 나섰다. 행복꽃농원은 분재수를 비롯해 야외에 심는 조경수와 실내식물도 다루는 큰 규모의 화원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분재수에 애정이 간다는 류 대표는 그 이유에 대해 '까다로움'을 꼽았다. 조경수는 외부에서 즐기는 풍경이라면 분재는 내 지근거리에서 만나는, 거실과 베란다에서 만나는 풍경이어서 그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
크기가 작다고 해서 들어가는 관리나 정성이 작은 것은 또 아니다. 오히려 균형잡힌 크기를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는 힘이 더욱 든다고 말하는 류 대표는 그런 모든 과정이 분재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꼽는다.

애초에 외부에서 커야 했던 나무였던 만큼 물관리와 통풍, 생육환경까지 세심한 관심을 쏟아야만 위엄있는 모습은 유지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분재수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시작된 분재문화가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흘러갔는데 이제는 일본의 분재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과 중국에서 찾는 지경에 이른게 작금의 현실이다.
류 대표도 일본의 발전된 분재산업에 대한 부러움을 숨기진 않았다. "확실히 기술개발 분야는 월등한 것 같습니다. 종자부터 육종, 이와 관련된 재료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을 거듭했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부분에선 경험도 시행착오도 부족해 아쉽긴 하죠."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 시작되는 법. 아버지가 일궜지만 이제는 노후된 농장시설을 전기로 바꾸면서 생육환경을 개선하는가 하면 농업기술원에서 '신기술 접목사업'을 수강하며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부분은 아버지와 함께 개발한 신품종 '소사나무'다. '유천금'이라 이름 짓고 특허까지 마친 이 나무는 일반 소사나무와는 달리 샛노란 황금빛 잎이 나는 돌연변이 종으로, 접목과 개량을 거듭한 끝에 유전자 형질을 고착화 하는 데 성공했다.

황금빛 덕에 여타 소사나무보다도 가격면에서도 우수해 농가소득 향상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초보농부' 류 대표는 벌써부터 설렘이 가득하다.
이제 농부로서 10년을 지나온 류 대표는 앞으로의 10년, 20년을 기대하며 마냥 돈벌이에만 매몰되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밝혔다. 분재가 가진 독특한 기운을 보다 많은 사람과 보고 즐기며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치유농장을 꾸려보고 싶다는 꿈을 키우고 있는 것.

이미 아버지인 류대삼씨는 퇴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무료로 분재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자체가 이미 치유농업의 시작임을 일컫는 류 대표의 뿌듯한 표정을 보니 실력도, 베푸는 마음도 부전자전(父傳子傳)이구나 싶었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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