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이흥재는 결정적 순간을 위한 ‘시간여행자’이다.

그는 원하는 한 컷을 위해 긴 시간 매복을 한다. 달빛이 고분을 드러내거나 새벽별이 호수의 표면을 흔드는 장면을 구하기 위해 한 밤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기다림의 시간은 길어도 포착하는 결정적 순간은 그에게 짜릿함과 황홀함을 선사한다. 탄성과 전율이 뒤따르는 축복의 순간, 작가와 풍경 사이의 만남이 이뤄지는 때이고, 월광산수와 그의 내면이 수평을 이루는 순간인 것이다.

13번째 개인전 ‘월광산수’는 그가 밤의 달빛과 새벽의 여명을 조명삼아 카메라에 담은 은밀하고 고요한 자연풍경을 보여준다.

특히 해가 지고, 해가 뜨기 전 자연의 신비를 보여주는 ‘트와일라이트 블루(twilight blue)’의 하늘은 이번 전시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지난 2018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를 다시 본다’라는 전시가 열렸다. 그는 임옥상 등 다섯 명의 쟁쟁한 작가들과 함께 사진작가로 전시에 초대받았다. 그 전시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차례 경주를 방문했다. 갈 때마다 두어 밤을 경주에서 보내며 죽은 자들의 집인 ‘고분’을 해가 진 후 찾았다.

“어느 날 저녁 무렵 황남대총을 찾았다. 왕릉 너머 살포시 보이는 푸른 하늘은 지금껏 제대로 보지 못한 빛깔이었다. 황홀했다. 난 ‘블루’에 빠졌다.”

그가 포착하는 풍경은 경주 왕릉을 비롯해 고분의 밤 모습, 모악산의 여명, 구이저수지의  달 등이다. 전주, 구이, 불재, 안덕 등 지역적 특성이 짙은 장소들이라 밝은 햇빛 아래 찍는다면 관광사진 처럼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곳들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장소들도 달빛으로 드러난 모습을 낯설고 신비롭다.

이처럼 지역성에 기반하면서도 보편성을 지향하는 그의 작품은 전주한지를 인화지로 사용하는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2016년 전북도립미술관 서울관 전시 이후에도 수차례 전주한지를 인화지로 사용했다. 한지 특유의 질감으로 인해 회화같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전영백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는 “지역적인 것이 세계적인 법. 이흥재의 사진은 전북 예향의 한국성에 본을 두면서도 ‘기념품주의’에서 벗어나 있다. 맥락은 있으나 특징을 일반화하여 지역성에 얽매이지 않는 것. 그의 사진이 갖는 예술성의 핵심이다”고 평가했다.

전시는 11일부터 21일까지 한국전통문화전당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개막식은 11일 오후 5시.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전주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학과 예술사전공,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개인전 외에도 신라를 다시 본다(2018. 12 국립경주박물관)를 비롯하여 다수의 기획초대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전북도립미술관장, JTV 전주방송 객원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정읍시립미술관 명예관장, 무성서원 부원장, JTV 전주방송 ‘전북의 발견’ 프로그램 진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병재기자·kanadasa@
12-선을 따라 흐르다 104×156cm 2018. 1. 31, 오후 6시05분.jpg
12-벚꽃 엔딩 104×156cm 2019. 4. 18, 오후 5시20분.jpg
12-이흥재 작가가 10일 전시가 열리는 한국전통문화전당 기획전시실에서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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