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에서 온 용진댁 당티후에씨와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주윤군이 할머니와 함께 주말 오후를 보내고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60Km쯤 떨어진 하이즈엉에서 나고 자란 당티후에(31)씨의 사연이다.
오빠 둘, 언니 둘, 여동생 하나. 6남매 중 다섯째인 당티후에는 지난 2012년 22살의 꽃다운 나이에 전북 완주군으로 시집을 와 완주군민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전혀 어색하지 않은 한국어를 구사하는 밝은 미소 뒤편에는 감춰진 아픔이 크다. 그 무엇일까?

#아픔 1
하나뿐인 아들 박주윤(8)군은 장애학교에 다닌다. 돌잔치를 넘겨 20개월쯤 지나서 알았다.
아이가 말을 못하고 걸음마가 늦어 찾아간 전북대병원에서 발달장애 진단을 받고 얼마나 흐느껴 울었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주윤이가 또래아이들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꿈을 꾸고 있다. 익숙해가는 주윤이의 모습이 매일 눈에 밟힌다.
지체장애 특수학교인 전북푸른학교에 입학해 2학년이 되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종일 할머니와 함께 집에서 씨름하는 일이 일상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발달장애치료센터를 오가는 일이 유일한 외출이니 주윤 군도 말을 할 수 없지만 답답함이 크다.

▲ 미소천사 주윤이의 빛 바랜 돌사진이 걸려 있는 주윤이 방에 따사로운 햇살한줌이 내려앉는다.

#아픔 2
완주군 용진면 새댁이 된 당티후에의 하늘빛 꿈이 회색으로 바꾼 시련이 찾아왔다.
나를 사랑해주는 신랑, 친정엄마처럼 세세한 것 까지 챙겨주던 시어머니, 아프지만 해맑은 웃음으로 천사 같은 주윤이와 함께 한 조그만 행복은 2016년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건강하던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등지며 발달장애 아들과 병약한 시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됐다.
시어머니 최상례 씨(80)는 평소 불편한 무릎으로 고생이 심한 데 최근엔 허리까지 아파 거동이 불편하다.
“아들 가고 딸이 하나 생겼다”며 말을 뗀 최 여사는 손주가 정상이 되는 모습을 보고 눈을 감는 것이 소원이란다. “맛있는 것도 잘 사다주고, 말 한 마디 한 마디 따뜻하게 해주는 착한 며느리 보는 것이 안쓰러워~.”
아들 몫을 며느리가 하고 있으니 미안한 데, 손주까지 저렇게 아프니 참으로 애처롭다.

▲ 장미가 활짝 핀 담장너머 텃밭에 온식구가 출동해 물을 주고 있다.

#희망 1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당티후에 씨는 지난 2017년부터 완주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베트남어 통번역지원사로 근무 중이다. 결혼이주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한국어 미숙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때마다 다문화센터를 찾아 상담하고 의논하며 견뎌 왔다.
지금은 수년전 자신이 경험했던 어려움이 경력이 되어 통번역 지원사로 결혼이주여성의 소통을 돕고 있다.
무기계약직이지만 베트남에서 온 같은 처지의 동포들을 돕고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어 완주군다문화가족지원센터 근무는 한국에 발을 디딘 후 성취한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한다.
급여가 많지 않더라도 안정적이고 집도 가까워 당티후에 씨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주는 울타리다. 동병상련 이라는 말처럼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던 그가 동포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한줌이라도 더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 완주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베트남어 통번역지원사로 근무하는 당티후에씨.

#희망 2
목표는 오직 하나!
아들 주윤이의 재활에 모든 것을 걸기로 마음먹으며 희망이 생겼다. 주윤이의 치료는 베트남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지만 이곳 한국에서는 가능하다. 아이가 치료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교육환경, 친자매처럼 터놓고 지내는 입사동기 김현아 팀장의 격려가 너무 감사하다는 그녀. 마냥 신세 한탄 할 겨를이 없다. 오늘도 센터에서 밝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으며 베트남에서 온 새댁들의 고민과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보낸다.
그녀가 그리던 하늘빛 꿈이 파란색으로 선명해질 것이 분명하다. 아자아자~.

/글·사진=장태엽기자·mode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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