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 그렇다고 쓸모없는 존재도 없다.”

사람의 입술 안쪽에 따뜻하고 감미로운 것들을 내주고 때로는 차고 시원한 것들을 내주었을 컵. ‘커커’라는 이름을 가진 컵은 지금 강가 풀숲 미루나무 아래에 놓여 있다. 정확히는 미루나무에서 강물 쪽으로 열두 발짝쯤 앞에 놓여 있다.

물이나 커피같이 일상적인 것만 담아왔을 컵. 그대가 사랑하는 이의 입술보다도 그대의 입술에 더 많이 닿았을 컵. 컵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컵 안에 이야기를 담을 순 없을까?”

한국을 대표하는 서정 시인이자 <아홉 살 마음 사전>으로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까지 사랑받는 박성우 시인이 머그컵 커커의 이야기를 담은 <컵 이야기>(오티움)를 펴냈다.

<컵 이야기>는 소풍 나왔다 버려진 컵 하나가 자연 속 동식물을 만나게 되면서 저마다의 이야기를 따스하게 풀어가는 형식의 동화다.

박성우 시인은 책 속에서 독자들이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도록 담백한 플롯에 특유의 선한 감수성을 녹여냈다. 거기에 <고슴도치의 소원>으로 서툰 어른들의 마음을 다독인 김소라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마치 아이의 시선처럼 투명하게 컵이 바라보는 세상을 담아낸다.

“나한테도 발이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한번 살아보고 싶어.”(책 속에서)

선 자리에 붙박인 채 움직일 수 없는 컵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은 어떨까. 버려지고 잊힌다 해도, 다시는 누군가의 입술에 닿을 수 없다 해도, 컵은 자신의 생김새처럼 둥글고 둥글게 세상을 비춘다. 귀처럼 생긴 손잡이로 주위를 둘러싼 생명체들에게 귀 기울여주고, 자기의 텅 빈 안쪽을 온전히 다 내준다. 비가 오면 빗물을 받아 출렁이고, 갈 곳 잃은 덩굴의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묵묵히 한자리를 지키며 주위의 생명체에게 귀 기울이는 것 또한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긴다.

박성우 시인은 머그컵 커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가치가 있고 쓸모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안도현 시인은 <컵 이야기>를 읽고 이런 말을 남겼다.

“컵에는 물이나 커피 한 잔만 담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박성우 시인의 머그컵 커커는 놀랍게도 주변의 모든 것을 담고 끌어안고 모든 것과 대화한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찮게 여기던 것들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고의 대전환, 우리는 그걸 사랑이라고 부른다.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선해진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벌써 이 책의 두께만큼 착해진 듯하다.”

박성우는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등과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 동시집 <박성우 시인의 첫말 잇기 동시집> <박성우 시인의 끝말잇기 동시집> 등을 냈다. 산문집과 어린이책도 여러 권 펴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 젊은 작가상, 백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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