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했다. 옷과 신발을 태우고 아직 드시지 못한 항암제를 버렸다. 어머니의 80여 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잠시였다. 한두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흔적은 붉은 불구덩이에서 하나씩 소멸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인간의 삶의 마지막 흔적이 참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낡은 옷을 보면서 좋은 옷이라도 해 드릴 걸 하는 미련도 남았다. 자녀들 모두 스스로 앞가림을 할 정도로 모두 성장했는데, 당신을 위해 변변한 옷 하나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지냈다. 돌이켜보니 어머니의 삶은 몸에서 배어나는 검소함 그 자체였다.
 두 달 전, 어머니는 작은 통 하나를 내밀었다. 분홍색이 나는 작은 보석함이다. 삶의 종착역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있어서일까.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어머니는 보석함을 열고는 우리 삼 남매에게 나누어 가지라는 것이다. 보석함에는 목걸이와 팔찌가 하나씩 그리고 금반지 2개와 있었다. 금반지 하나는 쌍가락지였다. 어떤 것을 누가 가질 것인지를 말씀도 없이 그냥 나누어 가지란다. 나는 어머니가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어 펄쩍 뛰며 거절을 했다. 어머니의 물건이니 받을 수 없다며 보석함을 제자리에 갖다 두었다.
 오늘 그 보석함을 꺼냈다. 삼우제를 마치고 마지막 남은 어머니의 유품인 보석함을 정리해야 했다. 주인을 잃은 보석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어야 한다. 남긴 물건이 적다고 섭섭하다거나 아쉬움은 전혀 없다. 보석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어머니는 따뜻한 사랑이 우리 삼 남매에게 남겨 준 가장 큰 유품이기 때문이다.
 보석함에서 쌍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석 돈이라고 했다. 언제 샀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마 3~40년 정도는 되었을 것 같다고 했다. 농사일로 두툼해진 어머니의 손가락 아름답게 해 주었던 반지이다. 농사일하면서 손가락이 굵어지면서 언젠가부터 보석함에 넣어두었던 반지이다. 닳고 닳은 쌍 반지의 빛나는 모습이 부모님을 닮았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중년이 되어가면서 가끔 그 속담에 고개가 끄덕여질 때가 있다. 부모님은 60년 가까이 결혼 생활하시는 동안 가정의 화목, 검소함과 효도를 실천하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식 앞에서 심한 부부싸움 한번 한 적 없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어머니는 집에서 두부나 떡이라도 하는 날에는 큰집에 계시는 할머니께 먼저 가져다드렸고, 산에 땔감을 하러 간 아버지가 오기 전까지 저녁을 먹지 않고 마중을 나가게 시켰다. 또한, 가난한 살림에도 검소한 생활로 자녀 둘이나 대학교육까지 시켰다. 부모님의 많은 가르침 덕분에 나 역시 결혼생활 30년 동안 심한 부부싸움 없이 무난하게 잘 지내고 두 동생 역시 별 탈 없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어머니의 몸은 강하지 않았지만 부드러우면서 총기가 있었다. 자녀를 애틋하게 보살폈지만, 나쁜 행동을 할 때는 단호하게 혼을 내셨다. 어머니는 늘 긍정적이셨고 정신력이 대단했다. 돌아가실 때까지 13년 동안이나 암 투병을 하면서도 당신보다 자식들 걱정이 우선이었다. 투병하는 당신으로 인해 불편해하는 자식들을 우선 배려했고, 우리 아이 결혼 걱정과 조카들 대학 입학시험까지 우리 삼 남매 걱정은 혼자 다 하셨다.
 생활력 또한 강하셨다. 적은 돈도 모아서 살림에 보태셨다. 고향 집에는 이십 년 전의 이불을 지금도 사용할 정도로 검소하셨다. 양말은 늘 기워서 신었고 새 옷은 아까워 보관만 하셨다. 이제 어머니의 흔적을 모두 소멸되고 남은 건 작은 보석함뿐이다.
 보석함을 열었다. 그리고 아내와 제수씨 그리고 여동생을 불렀다. 작은 보석함에서 팔찌, 목걸이, 반지를 꺼냈다. 나는 세 명에게 의논해서 나눠 가지도록 하고 몇 걸음 뒤에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가 남긴 보석은 세 명이 나누기에 맞지 않았다. 팔찌와 비교해 반지나 목걸이가 가벼웠기 때문이다.
 세 명은 가장 무거운 팔찌를 놓고 잠시 실랑이가 있었다. 서로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여동생에게 제수씨와 여동생은 아내에게 팔찌를 권했다. 결국, 여동생과 제수씨의 주장대로 아내가 팔찌를, 여동생은 목걸이와 쌍 반지를, 제수씨는 나머지 반지를 가지는 것으로 유품을 정리했다.
 세 명이 다독이며 실랑이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다. 값비싼 물건은 아니지만, 서로 양보하는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오늘처럼 서로 양보하는 모습은 우리 삼 남매의 일상이었다. 어머니가 남긴 보석도 소중하지만, 서로 화목하는 가정을 만들어 준 것이 더욱 소중한 어머니의 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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