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武王)의 숨소리 따라

아홉 마리 용이 수호신이 되어 마을을 지켜준다는 익산시 금마면 구룡마을. 이곳에 한강 이남에서는 최대 군락지를 자랑하는 대숲이 있다. 전체 면적이 5만 제곱미터나 되는 장대한 규모의 대숲에서 이는 바람소리가 웅웅웅, 먼저 귓전에 닿는 곳.

금마는 그 옛날 마한의 도읍지였다. 무왕이 백제 중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세운 백제의 마지막 고도. 바로 그 구룡마을 끝 언덕받이의 400년 된 느티나무 밑 정자에서 바라보면, 광대한 대숲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건너다보고 있으면, 백제 무왕(武王)의 절박한 숨소리가 묻어나기라도 할 것만 같아 절로 숨이 그러모아진다. 이 거대한 대숲이 언제부터 형성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까마득한 역사 속 전설이 무왕의 발자취를 쫒아 정말 구룡(九龍)이라도 되어 튀어나올 듯도 하다.  
대나무를 그릴 때는

논길을 가로질러 걷다보면 곧바로 길은 대숲으로 이어진다. 대숲 하면 대개 담양 죽녹원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구룡마을 대숲은 정돈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어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일부 구간에는 오죽 또는 분죽이라 부르는 솜대가 자라고 있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주요 수종인 왕대의 북방한계선이어서 생태적인 가치도 높다. 그래서일까. 대숲 사이로 걷는 내내 잘 자란 대 하나 그려보고 싶다는 충동이 이는 것은.

본래 대나무를 그릴 때는, 맑고 조용한 심경으로 그려야 한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분노한 듯이 그려야 좋은 그림이 나오기도 한다. 마디 부분에서 굽거나 휘어지게 해야지 줄기 자체가 굽어서도 안 된다. 그래야만 대의 높은 품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순이 나오는 때여서인지 마음이 한껏 들떠 마냥 고요해지지만은 않는 것을 어쩌랴.

실제로 죽순은 하루에 1m 이상을 자란다. 그만큼 빠르게 자라므로 새벽에 순이 나면 해질녘에는 이미 무럭무럭 자라서 못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나무의 굵기 또한 죽순의 크기와 같아 죽순이 굵으면 대도 굵다.

구룡마을 대숲의 대나무들은 어른 남자 팔뚝 굵기의 것부터 어린아이 팔목 두께만한 것까지 무척 다양하다. 발 디딜 틈만 있으면 대나무가 뿌리를 뻗어 대나무 아닌 다른 식물들은 찾아볼 수 없다. 햇빛 한 오라기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지진이 나도 대밭에 들면 산다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빈 대 속을 휘돌던 서늘한 기운이 줄곧 등골을 시원하게 식혀주고 있었다.
‘신의 선물’ 구룡마을 생금밭

쓰임새가 많아 ‘신의 선물’이라고도 부르는 대나무. 대나무밭을 예전에는 생금밭이라고 할 정도로 그 활용도도 무척 다양하다. 대밭 한 마지기 즉 300평만 있으면 대와 죽순, 죽세공품을 만들어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룡마을에서 만드는 죽제품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아 강경 5일장을 통해 인근 지방으로 참 많이 팔려갔다는 얘기도 있다. 심지어 충청도나 경기도 지방에서도 구룡마을 죽제품을 으뜸으로 쳤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대나무의 자잘한 가지는 빗자루를 만들고, 댓잎은 화 기운을 내리는 차로 쓰는 등 버릴 게 하나 없었다. 더군다나 뿌리만 몇 캐다가 드문드문 심어 놓으면 금방 대밭을 만들어놓으니, 송아지보다 귀하다 할 밖에. 그 귀하디귀한 금밭을 걸으며 간간이 놓여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한참을 그대로 있어도 본다. 길이 평탄하고 그리 길지만은 않아 다리가 아프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나마 앉아 올려다보는 대나무의 풍취가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대나무들은 하나같이 운필(運筆)을 할 때처럼 신속하고, 머뭇거림이 없다. 아랫부분이 굵고 마디 간격이 좁다가 차츰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지며 마디 간격이 넓어지는 걸 보면 속이 다 후련해진다. 잎이 많은 가지는 아래로 굽고, 잎이 적은 가지는 위로 치켜들고 있는 모양이나 늙은 가지는 의젓하며 굳세게 뻗고, 마디는 크고 야위어 있는 것이 또한 대나무의 매력이다. 밑에서 위를 올려다볼 때는 치솟고 뛰어오르는 기상이, 반대로 위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볼 때는 쌓고 쪼개는 듯한 중압감이 느껴지는 것도 비단 나뿐만은 아닐 터.

뜬바위 전설과 함께 하는 ‘백제 무왕길’코스

구룡마을 대숲이 보이는 초입 안내판에 소개된 것처럼 길은 다시 명상의 길, 소통의 길, 치유의 길로 갈린다. 그 갈림길 어느 공터에서 전북지역 마실길을 걷는 ‘마실길’모임 사람들과 함께 미니 음악회를 감상할 수도 있었다. 온통 대나무로 둘러싸인 숲에서 듣는 오카리나 선율과 대금소리, 그리고 댓잎 서걱이는 소리가 어우러져 맑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대나무는 좀처럼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한다. 평생을 사는 동안 대꽃 한 번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도 많다. 피어봐야 화려하지도 않은데다가, 대꽃이 지면서 대나무도 함께 죽기 때문에 보기 힘든 꽃이 되었다. 실제로 50~60년 만에 한 번 피었다 지는 꽃이어서 나 또한 아직 대꽃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사람들과 함께 발밑에서 사각이는 댓잎 위에 앉아 음악 향연을 즐길 수 있는 그 시간 자체가 구룡마을에 핀 대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가면 윗돌과 밑돌이 서로 떠 있다는 뜬바위가 나온다. 미륵산에 살던 힘센 장수가 지나다가 근처의 바위를 발견하고 그걸 집어다가 바위 위에 포개 올려놓아 생겼다는 바위. 올려 있는 윗돌에는 장수가 오줌을 싸서 흘렀던 골과, 반짇고리나 가위를 놓았던 가위자리 모양까지 그대로 패여 있다고 한다. 베를 짜는 데 쓰는 북을 닮았다 해서 북바위라고도 불리는 지역의 명물이다.

뜬바위 주변에는 원래 가마바위, 말바위, 황새바위, 멍석바위 등 이름 있는 바위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채석 허가가 나면서 석재로 팔려나가거나 깨어져 버렸단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이 잘못 건드리면 부정을 탄다는 이유를 들어 뜬바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게 된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 하는 얘기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 섣달 그믐날 자정이면 돌이 뜬다고 하니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슬쩍 들기도 하던 것이다.

백제의 마지막 왕궁이었던 왕궁리 유적지와 쌍릉 등 무왕의 발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백제 무왕길’ 마지막 코스에 드는 구룡마을 대나무숲. 인기 드라마 ?추노?에 이어 영화 ?최종 병기 활?의 촬영지로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돌아 나올 때 만나게 되는 S자 형으로 굽은 길이 또 그렇게 운치가 있던 것이다. 한 옆으로 둘러 있는 흙담과도 잘 어울려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한들 전혀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그 길을 110가구나 되는 적지 않은 마을의 역사가 댓잎마다 깃들어 오후의 햇볕을 걷어주고 있었다.
/글 사진 김형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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