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완산구 서신동은 전주에서도 손꼽히게 규모가 큰 동네이다. 주거와 학군, 유통과 기관까지 없는게 없는 동네로 사람과 돈이 모이는 공간 그 자체였다.

그래서인지 금융기관들은 앞다퉈 서신동에 지점을 세우고 시민들의 쌈짓돈부터 목돈까지 관리하기 위해 열을 올렸다. 금융기관들에게 서신동은 '황금텃밭'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황금텃밭이 황무지였던 시절부터 '서민금융'을 기치로 내세우고 서신동과 함께 성장해 온 은행이 있다. 바로, 서신동의 터줏대감인 서신신협(이사장 한병훈)이 그 주인공이다.

1991년, 숲정이 성당에서 서신성당이 갈라져 나올 때 제2대 서광석 신부를 필두로 6,700만 원의 자본금으로 첫 시작을 알린 서신신협은 숲정이 신협과 처음부터 경쟁(?) 구도로 힘겨운 첫 출발을 해야 했다.

신협의 창립이념 특성상 천주교 신자들 위주로 운영되는 만큼 후발주자였던 서신신협은 인지도와 영업, 수익창출 등 모든 면에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나가야 하는 숙제가 주어졌단다.

"지금에야 서신동이 전주에서 손꼽히는 큰 동이 됐지만, 서신신협이 출발을 알렸던 90년대 초반만 해도 빈촌에 가까웠습니다. 없이 사는 이웃들에게 저금하라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입이 떨어지질 않았죠." 서신신협 초기 발기인 중 한 사람이었던 한병훈 이사장은 설립 당시를 생각하면 그저 막막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것이 서신신협만큼 어려운 위기를 거듭 반복해 온 조합도 드물다. 재무조합상태에서 권고조합상태로, 다시 재무조합에서 재무조합해제까지 오는 데 십수 년이 걸렸고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된 배당금을 주기까지 걸린 시간이 16년이니 그간의 고충은 모두에게 쓰린 훈장으로 남았다.

대부분의 금융권이 그러했듯 금융위기가 닥쳤던 IMF 시절부터 2000년 대 초반까지 합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서신신협 역시 끊임없는 합병설에 시달렸다. 조합원들에게 제대로 된 배당금 한 번 드릴 수 없는 처지를 생각하면 합병을 하는 편이 폐점을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안한 건 아니었다고.

2002년 처음으로 재무상태 권고조합으로 편입된 이후 구조조정까지 거치면서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2005년 결국 권고에서 재무상태 요구조합까지 어려운 상황은 들불처럼 번졌다. 각고의 노력 끝에 개점했던 지점까지 폐쇄하며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2008년까지 누적 적자가 18억 원을 넘어서면서 다른 조합에서조차 서신신협은 재기할 수 없다라는 비관적인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서신신협이 어려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농협중앙회를 비롯한 1금융권은 서신동 안에서만 지점을 2호, 3호로 늘리며 수적으로 우세한 지점을 차지해나갔다. 새마을금고 같은 2금융권과의 경쟁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동안 배당금 한 번 받지 못하면서도 꾸준하게 거래를 해주고 있는 조합원들을 봐서라도 대충 위기를 모면할 수는 없었다. 사활을 걸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협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서민금융으로 시작한 신협의 정신을 다시 아로새기는 것이 위기극복을 앞당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조조정이라는 최후의 수단까지 쓰면서 살리고자 했던 서신신협의 가치는 결국 서민을 위한 금융이어야 한다고 전 직원들에게 강조했죠."

영업방식부터 바꿨다. 수신의 경우 금리만 높으면 알아서 고객들이 찾지만 여신의 경우 이미 1금융권의 이율싸움에서 이길 수 없었다. 대출의 벽은 높기만 했다. 그렇다면 공략 타깃을 바꿔야 했다. 1금융권 이용에 제약이 많은 사람들, 그러면서도 천주교 신자들을 공략했다.

책상에 앉아있기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상가방문을 일일이 하며 서신신협의 이름을 알려나갔다. 특히, 틈새를 노려야 했다. 제1금융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대표적으로 아파트 중도금 대출 분야가 서신신협이 가장 공을 들인 분야였다.

그렇게 시나브로 쌓아가던 신뢰는 자산의 증가로 이어졌고, 자산의 증가는 재무건전성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그렇게 재무상태 권고조합마저 해제됐다. 2014년의 일이다.

서신신협은 여타 신협과 마찬가지로 금융감독원의 지시를 받는 만큼 운영에 제약이 많은 편이지만, 신협의 근본정신을 잃지 않고 봉사하는 마음을 꾸준히 지역사회에 베풀며 그간의 사랑을 갚아나가고 있다.

단순히 이율 퍼센트의 문제가 아닌, 금융서비스와 서민복지를 모두 아우르는 공간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게 이곳 직원들의 마음이다. 최영재 상무는 "이사장님이 솔선수범해 진행하는 수 많은 봉사활동을 통해 모든 직원들이 서신동에 대한 애정을 키우고 있습니다. 또한, 서신신협을 찾는 고객들에겐 언제나 든든한 금융 울타리가 되어주겠다는 것이 모든 임직원의 약속입니다."라며 환하게 웃었다.

서신신협은 크지 않다. 그러나 온기가 느껴진다. 온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그곳에 있어줘서 일 터. 곧 장마가 그치면 태양이 작열하는 뜨거운 불볕더위가 찾아들 것이다. 그때 서신신협을 찾아보자. 따뜻한 사람들이 건네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 입을 베어물고 자신의 재무상태를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낸 서신신협 임직원들이 제안하는 금융서비스, 충분히 받아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홍민희기자·minihong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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