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숙 국민연금공단

 

 나는 운전경력 32년에 무사고 운전자이다. 장롱 면허라 무사고인가 생각하겠지만, 나는 운전을 즐긴다. 지금은 운동을 위해 걸어 다니지만 예전에는 웬만한 거리는 차로 다녔다. 가족 여행을 할 때는 승합차 운전도 자주 했다. 모범 운전자는 아니라 가끔 과속 스티커를 받기도 하고 가벼운 신호 위반 경험도 있지만 주행 중 사고를 낸 적은 없다.
 가끔 TV에서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을 방송해주는 프로그램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운전행태가 너무 많다. 운전자가 어떤 조작을 했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사고 과정을 보면 잘못된 운전 습관이 짐작된다. 운전이 조금 능숙해지면 한 손으로 핸들을 휙휙 돌리고 창문에 팔을 걸쳐 운전하는 사람들을 본다. 드라마를 보면 운전하면서 사랑을 속삭이기도 하는데 촬영상황인 줄 알면서도 운전자가 옆에 앉은 연인에게 고개를 돌리고 있으면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대형 사고는 초보운전자가 아니라 운전경력 3~5년 정도 되어 운전이 조금 익숙해진 사람들이 낸다고 한다.
 오래전 나도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셋째를 임신한 지 7개월쯤 될 무렵이었다. 운전경력이 5년 정도 되었다. 휴일이라 이모 댁에 놀러 간 날이다. 할머니와 두 아기가 동행했다. 이모 댁은 승용차로 1시간 정도 가는 거리였다. 남편이 일이 있어 임산부임에도 운전대를 잡았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단풍이 물들던 가을이었는데 쨍쨍 내리쬐는 햇볕 탓에 더웠다. 앞뒤 창문을 활짝 다 내리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뻥 뚫린 국도를 신나게 달렸다. 한나절을 놀다가 돌아오려고 마당에 세워 둔 차를 타려고 문을 열었더니 차 안에 파리가 까맣게 들어가 있었다. 이모 댁은 양돈농가여서 집 주변에 파리가 많았는데 자동차 문을 올리지 않고 차를 세워놓았던 탓이었다. 차 문을 열어놓고 겉옷을 벗어 파리를 쫓았지만 몇 마리는 차 안에 남아 날아다니고 있었다. 휴일 오후라 늦으면 귀경하는 차량으로 길이 막힐 거라고 그대로 서둘러 출발을 했다.
 누런 들판을 사이에 두고 동네 길을 나오며 창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차 안에 있던 파리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차량 앞 보닛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거나 계기판 근처에 딱 달라붙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속도를 줄인 뒤 한쪽 손으로 파리를 창문 쪽으로 쫓았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두 딸도 열심히 파리를 쫓았다. 그런데 문제는 끝까지 안 나가는 파리 두어 마리가 앞자리 보조석 근방에서 계속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나는 오른편으로 몸을 조금 기울여서 팔을 휘둘렀다. 그때 내 왼손은 나도 모르게 몸을 따라서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 어!’하는 사이에 차는 도로를 벗어나 길옆 밭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자 나는 정신이 없었다. 농작물이 없던 빈 밭이니 그냥 브레이크만 밟으면 문제가 없었는데, 당황하는 순간 내 발은 밟고 있던 엑셀레이터를 더 힘껏 밟고 말았다. 차는 밭을 통과해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으로 처박고서야 멈춰 섰다.
 논으로 떨어져 박힌 차를 이모부 차로 견인을 시도했으나 꿈쩍하지 않았다. 급기야는 동네 트랙터를 불러와서 한바탕 시끌벅적한 뒤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논에 물이 차 있고 벼가 있어서 자동차는 아무런 흔적이 없고 진흙만 잔뜩 묻어서 끌려 올라왔다. 사고를 당했지만 차도 멀쩡하고 나 외에는 운전할 사람도 없어 그 차를 다시 운전하여 서울까지 왔는데 어찌나 식은땀이 나는지. 그다음부터는 운전 습관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변속기에 한 손을 올리고 한 손으로만 운전대를 잡기도 했는데 그날 이후로는 운전이 더 익숙해진 뒤까지도 운전대만은 꼭 두 손으로 잡는다. 지금은 자동 변속이 되어 손이 약간 자유롭지만 한 손으로 휙휙 운전대를 돌리지는 않는다. 큰 댓가를 치르지 않고 안전운전의 교훈을 얻었으니 그나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파워핸들에 손바닥 올리고 한 손으로 부드럽게 운전대를 돌리는 운전자가 멋지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규칙은 위기의 순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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