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아름답던 그 모습 그대로

최수진의 영화 속 전라북도-2.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 ‘김제시 금산면’ 전라일보l승인2020.07.08l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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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보리울성당으로 등장한 수류성당

시원한 바다, 파란 하늘, 작열하는 태양. 우리가 흔히 여름하면 떠올리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여름 영화 속 풍경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내게 여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보리울의 여름>이다. 그 이유는 무척 단순하다. 이 영화를 찍은 동화처럼 예쁜 마을이 바로 내 고향 김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곳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지만, 같은 김제라는 이유만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그저 반갑고 신기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3년 4월은 막 고향을 떠나 새로운 일을 시작했던 때이기도 하다. 그러니 고향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오죽 반가웠으랴. 그리고 17년이 흐른 어느 여름 날, 그 시절 그토록 반가웠던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를 찾았다.

영화는 불교와 카톨릭, 동네 아이들과 성당 아이들, 그리고 전라도와 경상도라는 대립 관계 속 사람들이 축구를 통해 진정한 화합을 이끌어낸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모든 촬영은 김제시 금산면에서 진행됐다. 김신부(차인표 분)과 원장수녀님(장미희 분)이 인자한 미소로 맞이할 것만 같은 수류성당에서 시작된 촬영된 탐방은 보리울축구단과 읍내 축구단의 경기가 펼쳐졌던 화율초등학교를 거쳐, 우남스님(박영규 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귀신사로 이어졌다.

여전히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수류성당
첫 부임해 의욕 넘치는 김 스테파노 신부와 깐깐하기가 이를 데 없는 원장 수녀가 고아인 아이들과 생활하는 보리울성당.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의 수류성당은 예의 그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리울성당으로 재탄생했다. 수류성당이 보리울성당이 된 사연은 우연이 인연이 된 이야기다. 성당과 절, 그리고 초등학교가 주요 배경인 영화를 구상한 감독은 가장 먼저 성당을 찾아야 했다. 산자락에 있는 아름다운 풍광의 성당을 찾기 위해 천주교 교구에서 몇 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찾은 수류성당을 가던 중 풍광 좋은 학교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 학교가 바로 화율초등학교. 그 학교 운동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축구공을 보고 성당에 도착했는데 잔디밭에 똑같은 축구공이 있는 게 아닌가. 우연이 인연이 되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운명처럼 학교와 성당이 결정됐다. 운명처럼 결정된 수류성당은 사실 오랜 역사와 사연이 있는 곳이다.

1895년 9월까지 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에 있다 같은 해 10월 이곳으로 터를 옮겼다. 그러다 1950년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불을 질러 전소되었고, 1959년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쉽게도 성당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아이들 일로 사사건건 부딪치는 김신부와 원장수녀가 마음을 모으고, 자꾸만 엇나가는 태수가 마음을 다잡던 바로 그곳. 그리고 빨래를 널다 이장님 댁에서 탈출한 돼지의 난입으로 기겁하던 원장수녀를 위해 우남스님이 돼지를 잡고 서로 마음을 열던 곳. 성당 곳곳을 거닐다보니 성당에서 펼쳐진 갈등과 화합의 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축구로 대결하고 하나 되었던 화율초등학교
영화 <보리울의 여름>이 개봉된 해는 2003년. 2002년 축구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던 때다. 영화의 주된 소재는 축구고, 보리울마을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 역시 축구다.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한일전을 보며 열광하고 아쉬워한다. 영화 속 축구는 단순한 열광의 대상이 아닌, 갈등을 일으키고 화합에 이르는 주요 소재다. 동숙이 주축이 된 보리울마을 아이들과 읍내 중앙초등학교 축구단은 햄버거 내기 축구시합을 한다.

결과는 읍내 축구단 승. 이후 우남스님의 지옥훈련을 받은 동숙과 아이들이 태수를 주축으로 한 성당 아이들과 경기를 펼치고 결과는 성당 아이들의 참패. 장래희망이 중국집 배달원이라며 엇나가던 태수는 사실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시절 축구선수였던 김신부의 지도를 받은 성당 아이들은 정식으로 보리울 아이들과 경기를 한다. 우남스님이 이끄는 보리울 아이들과 김신부가 이끄는 성당 아이들의 세기의 대결. 폭우 속에서 치러진 불교와 천주교의 맞대결은 무승부로 끝나지만 서로 상대팀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두 팀은 보리울축구단을 꾸려 읍내 축구단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고 만다. 이렇게 갈등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는 공간이 바로 화율초등학교다.

평일 오전의 학교 운동장은 영화 속 다이내믹한 장면이 무색하리만큼 한산했다. 마침 비 온 뒤에 찾은 터라 운동장이 젖어있어서였을까. 운동장 양 옆의 축구 골대를 보는 순간 당찬 동숙이와 말썽꾸러기 태수가 죽을힘을 다해 경기에 임했던 우중축구 장면이 떠올랐다. 질퍽한 땅에 넘어지고, 고인 물에 온몸이 젖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공을 차던 아이들 모습이 말이다.

스님 아버지와 성당 다니는 아들의 화해의 공간, 귀신사
선명한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차를 몰아 귀신사로 향했다. 귀신사는 영화 속에서 우남스님이 기거하는 우남사로 등장한다. 영화의 시작에 김신부와 함께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는 다름 아닌, 우남스님의 아들, 형우다. 8년 만에 만난 부자는 스님인 아버지와 성당에 다니는 아들이라는 설정만큼 서로가 어색하고 낯설기만 하다.
“그런데 운암스님이에요, 우남스님이에요?” 갑작스런 아들의 질문에 “원래는 운암인데 사람들이 우남이라 불러서 우남이 됐다”고 멋쩍게 답하는 우남스님. 그렇게 그들은 영화 속 우남사, 즉 귀신사에서 어색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중 그들 역시 축구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경기하는 아들을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우남스님의 모습은 그저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에 형우도 마음을 열기 시작하고, 우남스님은 잠든 형우에게 미안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에서 무심한 듯 던지는 우남스님의 말. “내는 여기가 좋데이~”, 이어지는 아들의 대답. “저도 여기가 좋아요.” 그 대사는 마치 서로가 서로를 향한 고백처럼 들렸다. 보리울이 아닌, 서로가 좋다는 말로 말이다.
화율초등학교에서 차로 20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귀신사로 향하는 길에는 카페들이 즐비했다.

그 길을 지나 도착한 귀신사에는 우남스님과 형우는 없었지만 빼어난 풍경은 그대로였다. 거기에 잠에 취한 강아지 두 마리가 고요하고 평온한 절에 나른함을 더하고 있었다. 그저 고향이라는 이유만으로 반가웠던 영화 속 장소들은 실제로 가보니 훨씬 더 좋았다. 그리고 이제야 여름 영화 목록에 보다 자신 있게 올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글·사진 최수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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