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오랜만에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축산업을 하는 친구이다. 안부 인사가 끝나기 전에 급히 말을 막는다. 친구가 키운 개가 공무원을 심하게 물었다고 한다. 나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병원비를 물어 주어야 하는지 다급하게 묻는다.
 몇 해 전부터 친구는 개를 키웠다. 족보가 있는 진돗개라고 몇 번이나 내게 자랑을 했다. 친구는 진돗개를 두 마리를 샀는데 한 마리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나머지 한 마리는 친구가 키웠다. 십여 년 전 남편을 여의고 외롭게 살던 친구 어머니는 강아지를 자식처럼 사랑을 쏟으며 돌보았다. 이웃집에 음식을 나누어 줄 때도, 나이 든 이웃 어른을 부축해 줄 때도, 어린아이가 넘어져 일으켜 줄 때도 항상 같이 다녔다. 이웃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보고 자란 개는 목줄도 없이 혼자 다녔으나, 동네 사람들은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었으며 동네 사람들도 개를 보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어린아이들과도 잘 놀아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도 했다. 친구 어머니 역시, 이웃 아이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개를 매우 흡족해하였고 동네 아이들도 맛있는 음식을 나눠 주었다.
 축산업을 하는 친구는 달랐다. 도둑을 막기 위해 사납게 키웠다. 사람이나 동물에게 달려들어 물고 뜯는 방법을 가르쳤다. 친구는 자신이 개를 교육하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껴 개 훈련소에서 몇 달 동안 맡겨 훈련까지 시켰다. 친구는 개에게 사람도 먹기 힘든 고기도 먹이고 비싼 보약까지 먹였다. 특별 교육을 받은 개는 얼마 되지 않아 다른 개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싸움에서는 최고였다. 사납다고 하는 이웃집 개가 싸움을 걸어오면 일 분도 되지 않아 꼬리를 내리고 도망을 칠 정도였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은 싸움 대장인 친구의 개를 부러워했다. 친구 역시 사나운 개를 보며 매우 흡족해하며 자랑스러워하였다. 어느 날 이웃집 개가 발정이 나서 다가간 개를 보자마자 다리를 물어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 그런 행동이 몇 차례 있고 난 뒤 이웃집 개들은 친구의 개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좋은 개라고 부럽게 바라보았던 이웃집 개 주인들도 자신의 개가 다칠까 봐 외면하였다. 더구나 가끔 먹이를 주던 친구의 아들에게조차 달려들었는데, 다행히 친구가 발견하여 화를 면했다. 그 후 친구의 아들도 사나운 개 근처에 가질 않았다. 친구가 기른 개는 친구 이외에는 모두 적으로 알고 갈수록 사나워졌다.
 일이 터졌다. 군청 공무원이 축사 폐수처리 점검차 방문을 했는데 개에게 크게 물린 것이다. 군청환경과 공무원은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렇게 사나운 줄 몰랐다. 친구가 말려 생명에는 지장은 없었지만,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축산업을 하는 사람은 군청환경과 공무원이 직업상 중요한 손님인데 좋은 접대는커녕 큰 피해를 줬으니 친구는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친구는 도둑을 막기 위해 훈련시킨 비용만 해도 개 값의 수십 배가 넘는데, 개가 하는 일이 고작 도둑과 손님을 구별도 못하고 자신의 아들까지 물려고 대드는 매우 위험한 개가 되었으니 실망이 매우 컸다. 그렇다고 이 개를 팔려고 하니 지금까지 키운 정성이 너무 아깝고 그냥 키우자니 어떤 일이 다시 벌어질 것 같아 망설이고 있었다. 사나운 개 때문에 친구는 아내는 다시는 개를 기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고 있으니.
 군청 공무원이 친구 축사에서 물린 것은 법의 논리상으로 보면 친구의 책임이 그리 크기는 않을 수도 있다. 사고가 난 장소가 축사 안이고 개를 묶어 놓은 고삐가 그리 길지 않았고 개가 위험하다는 경고문까지 벽에 적어 놓았으므로 친구의 과실은 적다고는 할 수 있다. 담당 공무원은 출장 중 발생한 업무상 재해이므로 직장에서 병원비를 포함하여 부상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부상당한 공무원은 축산업을 하는 동안 계속 부딪혀야 하는 공무원이고, 본인의 축사에서 발생한 일이니 양보해서 잘 해결하라고 권했다.
 친구에게 대답을 해 주고 전화를 끊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말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개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사나운 개가 무슨 잘못인가. 인간이 만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사나운 개가 된 죄 밖에 없는데. 그게 어디 개 탓인가. 사람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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