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쓸고 닦고, 만만치 않은 청소일이지만 점심 무렵까지 부지런히 손을 놀리다 보니 어느새 끝! 사무실이 있는 순창지역자활센터로 향하는 핸들을 잡은 미요코 씨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진다.
학교운동장과 순창읍내 풍경, 현관에 내걸린 학생들의 작품이 투영된 유리창 너머로 묵묵히 청소하고 있는 미요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거센 바람과 폭우에도 가냘픈 줄기에 온 몸을 지탱하며 끝내 아름다움 꽃을 피워낸 그 흔들림. 올해 예순의 미요코 씨를 보는 순간, 흔들리며 피는 꽃이 생각났다. 왜 그랬을까? 그 스토리를 들어 본다.

일본의 알프스인 해발 3015m의 다타야마산이 있는 도야마현에서 순창으로 시집을 온 호리 미요코 씨(60). 1990년대 초반, 서른 셋 적지 않은 나이였다. 낯선 순창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그는 한 남자의 아내로,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로, 딸 셋을 양육하는 어머니로 바지런하게 살았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지금은 운명을 달리 하신 시어머니에게 딸들을 맡기고 순창의 타올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 지 수년 후. 남편이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해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져 갔다. 마음이 흔들렸다.

생활고에 지쳐있던 지난 2007년께,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된 ‘순창지역자활센터(한승연센터장)’ 도움을 받아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됐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급기야 청소대행 자활기업인 ‘순창하얀세상’의 대표가 되었다.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을 배달하며 자활사업에 참여한 미요코 씨의 성실함을 지켜본 센터관계자가 청소대행 창업을 제안한 것이다. 낯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키우며 꽃망울을 터뜨릴 수 있는 멋진 기회였다.

공동대표이지만 사업자등록을 하고 대표 직함을 얻으니 심적 부담이 상당했다. 기회는 간절한 자를 찾는 법. “그래, 한번 해보자!” 마음먹으니 못할 일이 없었다.
체구는 작지만 주어진 일은 묵묵하게 거뜬히 해내는 미요코 씨는 어느 곳을 청소하든 ‘더 열심히 더 성실히’라는 모토를 내걸고 내 집처럼 쓸고 닦았다. 유리창 한 장을 닦더라도 정성을 들였다.
 
최근엔 공공기관들이 청소인력을 직접 채용하는 사례가 느는 추세여서 청소대행 시장이 줄어들까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일했고, 몸은 고단하지만 고생한 만큼 일감도 늘어 사업하는 맛을 톡톡히 보게 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쇼크는 지방의 청소대행업도 거세게 흔들어 댔다. 공동대표 둘이 감당하지 못해 한 명을 더 채용해야 할 만큼 일감이 늘었던 호사(好事)는 잠시. 전 세계적 감염병이 장기화하며 일감이 눈에 띄게 줄어 지금은 순창북중학교와 원룸 1개가 그녀의 고객명단 전부이다.

사실, 평생 노력해 얻은 전 재산이 주공아파트 한 채인 미요코 씨 가족에게는 순창지역자활센터가 노아의 방주처럼 대홍수를 막아준 고마운 존재다. 덕분에 남편과 딸들, 그리고 자신의 고단한 생계를 의지해왔으니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센터에서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 대학을 졸업했지만 ‘근육긴장이상’이라는 희소병을 앓고 있는 큰 딸도 센터의 두부공장에서 일했다.
그래, 흔들려도 좌절하지 말자.
손바닥 위에 엄지를 편 주먹을 올리며 요즘 대세인 ‘덕분에’ 손동작과 함께 “비록 오늘이 힘들어도 내일은 나아질 것”이라며 미소를 짓는 미요코.
그의 담대한 모습을 접하며 꿈이 궁금해 물어 보았다. “단 하나, 건강이에요. 다섯 식구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낯선 땅 힘겨운 삶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미요코 씨의 작은 소망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글·사진=장태엽기자·mode70@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