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설 별의별협동조합 대표

 

 

어릴 때 바라본 어른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강한 사람이었다. 사춘기 존재론적 고민과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불안 따위는 이미 졸업을 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어도, 서른을 넘어 사십이 되어도 여전히 방황하고 때때로 갈팡질팡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을 선뜻 내어놓지 못하는 것은 어른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와 같지 않은 수많은 상황에 놓인 인생을 만나는 것에 여전히 서툰 것을 느끼게 되면서 이따금 삶이 어렵게 느껴지곤 한다.

 올해 들어 친정어머니 덕분에 병원을 자주 찾게 되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는 도중 부작용이 심하여 응급실에 내려갔다. 어머니의 응급처치와 검사를 마치는 중에 응급실로 CPR 환자가 이송되었다. 응급실에 CPR 환자가 올 것이라고 누군가 말하자 응급실에 있던 의료진들은 일제히 말하는 쪽으로 주의가 모아지는 것 같더니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이십여 명의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응급실은 병원에서도 가장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조용하지 못하며 서로가 바쁘게 움직이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CPR 환자가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응급실의 모든 눈과 귀가 그 환자에게 쏠리면서 생경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촌각을 다투는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하여 긴급수술까지 진행된 것 같았다. 이윽고 환자의 부인이 응급실로 들어섰는데, 어찌할 바 모르며 울먹이는 그 모습에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한 20분쯤 지났을까. 어떤 분이 자신의 아버지는 챙기지도 않고 그 환자만 보느냐며 항의를 했다. 항의가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자 병원으로 민원을 넣어 보안요원이 오기도 했다. 또 한쪽에선 환자와 보호자가 번갈아 가며 2~3분에 한 번씩 간호사에게 ‘이제 가야겠다, 밥도 못 먹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 정말 너무하지 않느냐’라는 불만을 터트렸다. 그 와중에 맞은편에선 노모에게 이것저것 상냥하게 이야기하며 안심시키려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다정한 아들이 있나 싶을 정도로 아주 침착하고 친절하고 재치 있는 목소리였기에 나의 귀가 어느새 그곳으로 쏠렸다. 그러다 그 아들이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났는데, 그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아들은 소리를 죽이며 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날 5시간 정도 응급실에 있으면서 참 다른 상황과 사람들을 목격하게 되었다. CPR 환자의 부인도, 항의했던 아들도, 불만을 터트리던 내외도, 어머니를 돌보던 아들도, 또 그 밖에 그곳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응급실은 그리 익숙하지 못한 곳일 것이다. 그곳에 그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며 토닥거리고 의자를 갖다 주고 궁금한 점을 편안하게 설명해주고 따뜻한 물이라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곳엔 의학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는 의료진뿐만 아니라 불안한 마음이 영혼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다독거려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응급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비슷하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늘 일어나고 아무리 준비를 한다 한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상황들은 여전히 발생하고 또 본인의 상식과는 정반대의 상식을 가진 사람들도 맞닥뜨리게 되는 응급사회. 이런 사회에서 불완전한 존재들은 나이도 연륜도 배경도 막론하고 누구나 실수를 한다. 어른들은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불안한 마음이 편을 만들고 적을 만들고 서로를 공격하고 끌어내리고 그 안에서 위안을 찾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사회가 양극화로 치달으면서 이러한 양상은 점점 더 부지기수로 늘어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에 알지 못하고 알 필요도 느끼지 못한 채 각자의 섬에서 지내는 것이다.
‘그건 네 사정이고’를 남발하는 이 사회가 과연 희망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각자 외롭고 힘들다.
 
‘완벽하지 않다.’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한다. 실로 완벽하지 않아서 서로를 필요로 했으면 좋겠다. 나의 부족이 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내어줄 수 있는 여분의 품이 되길 소망한다. 모두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흔들리기 때문에 이 사회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더 이상의 ‘갑’이나 ‘권력’, ‘위계’ 따위는 더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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