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민 국민연금공단

 

 옥이 이모네 가는 길이다. 봄바람에 가로수가 춤을 춘다. 이모집에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라디오에서는 보내온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곡을 들려준다. 청취자가 신청한 싱그러운 노래가 나온다.
 빨간 신호등에 차가 멈춘 틈을 타서 사연을 보낸다. ‘오늘은 이모네가 이사를 하는 날이에요.사촌 동생이 아빠 몰래 모은 방탄소년단 기념품을 내 차에 보관해 두어 가져다주러 가는 길인데 기분이 좋네요.’ 방탄소년단의 노래도 함께 신청했다. 선정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좋다.
 옥이 이모는 봄과 잘 어울리는 분이다. 내 엄마의 바로 아랫 동생이고 밝은 표정과 싱그러운 말투로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유독 예뻐해 주셨다. 그 덕에 에피소드도 많다. 소도시에 살던 어린 내가 동물원에 가고 싶다는 성화에 나를 부산까지 데려가기도 했고, 심심하다는 투정에 자신의 맞선 자리까지 나를 데려가기도 했다. 할머니에게 맞선 자리에서 있었던 얘기를 일러바쳐 이모 얼굴이 붉어지기도 했다.
 유치원 선생님이었던 이모는 가족들 앞에서 나와 함께 동요에 맞춰 율동을 하기도 했다. 그 때 같이 춤췄던 ‘짜라빠빠’ 노래가 최근 다시 회자 되어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함께 춤추던 때가 생각난다.
 방학 때 이모 댁에 놀러 가겠다고 떼를 써서 동생과 함께 간 적이 있다. 내가 포경수술 한 직후였는데, 며칠을 지내는 동안 이모가 환부를 소독해 준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다. 새댁이었던 이모가 난감하셨을 것이다.
 옥이 이모의 조카사랑은 끝이 없었다. 나는 학창시절 수학을 싫어했다. 이모부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셨는데, 방학마다 나를 가르치도록 했다. 이모부에게 수업을 듣고 집에 갈 때는 빠듯하셨을 살림에도 용돈을 주며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마다 ‘규민이 어디갔노, 니 없으면 재미없다.’ 하며 나를 찾았다. 나는 그런 이모가 좋아 친구들과의 약속도 어기면서 가족 모임은 참석했다. 내가 취직이 되지 않아 힘들어할 때에 포기하지 말고 너 하고 싶은 일 하라고 응원해 주셨다. 결혼을 위해 아내를 인사시켜드린 날에는 미리 준비한 노란 프리지아를 한 다발 건네며 ‘우리 가족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말씀해 주셨다. 아내는 아직도 따뜻하게 말씀해 주신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매년 어버이날마다 모인다. 어느 날 가족 모임에서 이모는 갱년기인지 식욕이 없고 기운이 없다며 힘들어했다. 가족들은 이모에게 힘내시라고 격려를 했고 어른들은 갱년기 이기는 방법을 조언해 주었다. 모두 힘들어하는 이모를 걱정하며 헤어졌다.
 다시 이모를 만난 건 서울의 어느 대학병원에서였다. 머리에 나쁜 혹이 자라고 있고 수술을 했는데 경과가 좋다고 했다. 이모는 언어기능을 담당하는 뇌에 문제가 생겨서 말은 잘할 수 없지만 보고 듣는 건 평소와 똑같았다. 한걸음에 달려간 나를 보고 이모는 이모부에게 조카 왔는데 음료수라도 주라는 눈짓을 주고 평소처럼 프로야구 중계를 보며 같이 응원했다. 회복 중인 이모는 아직 말을 잘 못한다고 했는데, 내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했다. 이모부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얼른 나아서 이모가 좋아하는 야구장에 다시 가기로 약속했고 이모가 좋아하는 쇠고기버섯죽을 사다 드렸다. 더운 여름이었지만 싱그러운 봄 같은 옥이 이모는 그렇게 생기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모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옥이 이모는 힘든 시간을 보내다 아픔이 없는 곳으로 가셨다.
  옥이 이모 집에서 이모 사진이 나를 반겼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이모는 봄보다 더 봄 같았다. 마음이 아팠지만 사진을 보며 나도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빠 몰래 방탄소년단 기념품을 많이도 모은 동생에게 꿀밤 대신 너 좋아하는 거 마음껏 하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옥이 이모가 우리에게 씨앗을 주고 갔다고 생각을 했다. 그 씨앗은 나와 동생과 또 많은 사람의 가슴에 심어져 싹을 틔워 누군가에게 따뜻한 봄이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언젠가 다시 옥이 이모를 만난다면,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씀드리고 싶다. 옥이 이모처럼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았다고 자랑도 하고 싶다. 봄이 지나가고 있다. 옥이 이모를 닮은 이 봄이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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