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에 위치한 선유도. 무녀도·신시도·갑리도·방축도·말도
등과 함께 고군산군도를 이루고 있다. 본래는 3개로 분리된 섬이었으나 중앙에 긴
사주가 발달되면서 하나로 연결됐다.

본래 군산도라 불렸으나 섬의 북단 해발 100여 미터의 선유봉 정상의 형태가 마
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선유
(仙遊)도. 이 섬은 시간의 흐름도 잊게 하는 황홀한 절경들을 품고 있다. 예부터 선
유도에서는 많은 절경들 중에서도 특별한 8가지를 가리켜‘선유팔경’이라 칭해왔다.
선유도는 과거 우리나라의 군사 요충지였다.

고려 때 최무선이 왜구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진포 해전기지였고, 임진왜란 때 함
선의 정박기지이며 해상요지였다. 임진왜란 중 이순신 장군도 1597년 9월 21일 고군산군도 선유도에 머물렀다. 당쟁의 희생물이 되어 관직은 파직되고 감옥에 갇혔다가 약 한달 만에 특사돼 도원수 밑에 백의종군 했다가 통제사 원균이 대패함에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남은 전선 13척으로 9월16일 명랑해전에서 왜장 마다시의 목을 베고 크게 전승을 올렸다. 그 뒤 계속 북으로 전진해 위도를 거쳐 선유도에 이르렀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12일 동안 머물다가 10월 3일 변산반도를 지나 법성포로 남향했다.

난중일기에 보면 선유도에서 명랑해전의 승전의 장계를 올렸으며, 나주 목사와 무장현감 등을 만났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선유도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치원이다.

고운 최치원. 신라 말의 석학이자 글씨 하나로 세상을 주름잡던 당대의 명필. 그
는 삶 자체가 신화다. 태어난 날은 있지만 하늘로 돌아간 날은 없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해인사 홍류동 계곡에서 갓과 신발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또 지리산 불일폭포에 은둔하다 하늘로 승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군산군도 금돈시굴(金豚始窟)에 얽힌 설화를 보면, 최치원의 부친이 고군산군
도로 사냥을 나갔다가 오히려 황금 빛깔을 지닌 암퇘지에게 붙들려 토굴에서 몇 달을 지내게 됐다고 한다.

그 사이에 황금돼지가 새끼를 배어 아이를 낳게 되었는데 그가 최치원이라는 것. 최치원이 다섯 살이 되어서야 두 부자는 돼지가 가져온 나무를 이용하여 배를 만들고, 이윽고 돼지까지 따돌려 탈출에 성공하게 한다.

또한, 그가 학문을 연마하던 곳을 이웃한 신시도의 월영봉이라 여긴다. 월영봉은
선유도를 중심으로 한 고군산군도 전망대라 불릴 만큼 풍경이 뛰어난 곳이다.

/군산=임태영기자·kukuu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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