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군 보안면 유천리(柳川里)와 진서면 진서리(鎭西里)는 천 년 고려청자의 메카로 발길 닿는 곳마다 비색(翡色)으로 반짝이는 청자파편이 무수히 존재하고 있다.

부안지역의 고려청자 가마터는 일제강점기인 1929년 일본인 학자 노모리 켄(野守 健)에 의해 최초로 발견․조사됐으며 1963년 유천리와 진서리 청자 가마터는 문화재관리국에 의해 국가 사적 제69호와 제70호로 지정됐다.

1966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의해 유천리 제12호 가마터 일대의 유물퇴적구 일부가 발굴 조사됐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도 유천리 출토 청자 편이 약 5000여점 정도 소장돼 있으며 1938년 일본인 후카다 야스토시(深田泰壽) 등에 의해 유천리 12호 가마터 퇴적구에서 다량의 유물을 유출한 것을 1958년에 구입한 것이다.

이 유물의 일부는 1983년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에서 출간한 ‘부안유천리요 고려도자’라는 도록에 소개된 바 있으며 2017년 이화여자대학교 창립 131주년 기념 소장품특별전을 통해 유천리 12호 가마터 출토 청자가 일부 전시됐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인 深田泰壽(심전태수)가 소장했던 일부 유천리 청자 파편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소장품에 들어갔다가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돼 보관․전시되고 있다.

부안지역 청자가마터군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이뤄진 것은 1990년대 이후이며 정밀지표조사는 1993년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 의해 최초로 이뤄졌다.

이 조사에서 진서리 가마터군은 6개 구역에 40개소가 확인됐으며 유천리 가마터군은 7개 구역에 37개소가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정식으로 문화재 시굴․발굴조사가 이뤄진 곳은 1990년 진서리 18호 가마터 발굴조사, 1993년 진서리 20호 가마터(가마 3기 확인) 시굴조사, 1997~1998년 유천리 7구역 가마터군(가마 5기 확인), 2015~2018년 유천리 3구역 내 12호 가마터 학술 발굴조사, 2018~2019년 유천리 6구역 26․27호 가마터, 2019년 진서리 34호 긴급 조사 등이다.

부안지역의 고려청자 유적과 유물의 연구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10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진행돼 왔으며 다년간의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2019년 9월 하순에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하기 위한 심의 신청 자료를 문화재청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동안의 연구에 의하면 부안지역의 고려청자유적은 12세기 후반~13세기까지 고려청자가 가장 아름다웠던 전성기 상감청자를 비롯한 음각․양각․상형 등의 청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바닷길을 통해 수도 개경을 비롯한 전국에 운송 공급했다.

부안지역에서 고려청자를 다량으로 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며 요업에 필수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요인으로는 바닷길을 통한 체계적인 조운 시스템(조운로․물류창고인 조운창), 고려 왕조에서 직영으로 관리했던 변산 수목장의 풍부한 땔감, 해안에 풍부한 자기 만드는 흙, 그리고 원활한 조운로 확보와 물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군사진지인 검모포진의 존재 등은 타 지역 고려청자 가마의 지리 환경적 요인과 비교했을 때 부안만의 특별한 점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런 요인들이 합쳐져 부안지역에서는 고려 황실용의 특별한 청자를 비롯해 귀족층․중산층이 사용하는 다양한 청자를 국가 주도 하에 체계적으로 제작 공급했으며 77개소에 이르는 가마터에 흩어져 있는 청자 파편이 그 증거로 남아있다.

부안고려청자의 우수성은 최고급 상감청자라는 추상적인 단어로 알려져 왔지만 발굴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내용으로 축약된다.

첫째, 예로부터 왕과 왕비는 용과 봉황 문양으로 상징됐으며 상서로움과 존귀함을 갖춘 일종의 표식처럼 여겨져 왔다.

이처럼 특별한 문양이 새겨진 고려시대 청자․백자가 유독 부안 유천리 12호 청자가마터 일대에서 빈번히 제작됐음은 부안 고려청자유적의 성격을 유추하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특히 높이 80㎝ 이상 되는 큰 매병에 새겨진 파도 속 용의 자태는 고려 황실의 위풍당당함을 충분히 나타내 주고 있다.

부안고려청자에 새겨진 용은 너무 엄하거나 비현실적인 모습이 아닌 표정에서 느껴지는 인자함과 기운, 생동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하는 마음을 자발적으로 품게 만든다.

이것이 부안고려청자에 새겨진 용의 품격이며 매력이다.

둘째, 부안 유천리에서 발견된 중요 유물 가운데 동채(銅彩)․동화(銅畵)청자가 극소량 출토됐다.

동채청자는 그릇 표면 전체에 산화구리 안료를 칠하고 청자유를 입혀 구운 것이고 동화청자는 그릇 표면에 산화구리(酸化銅) 안료로 문양을 그리고 청자유를 입혀 구운 것이다.

동채와 동화청자는 구리를 주성분으로 하는 안료로 굽는 조건에 따라 녹색, 검은색, 붉은색 등으로 색이 다양하게 나타나며 고온에서는 휘발성이 강해 사용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안료이다.

12~13세기 무렵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고온(1250~1300도)에서 구워지는 고려청자에 동채와 동화로 문양을 넣어 붉은색을 내는데 성공했으며 이것은 고려시대 도예 장인의 창의력과 뛰어난 기술력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부안 유천리 12호 고려청자가마터 일대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채와 동화청자가 함께 출토되는 곳으로 그 의미가 크다.  

셋째, 부안에서 출토된 청자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화려한 상감청자 문양에 있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흑백상감청자는 부안고려청자의 정수로 모란이나 국화와 같은 꽃문양을 단순히 반복해 새긴 것도 있지만 부안만의 독특한 정서가 스며있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문양이 있다.

대표적으로 ‘물가풍경문양(蒲柳水禽紋, 柳蘆水禽紋)’이 있는데 유천리(柳川里)는 순우리말로 ‘버드내 마을’로 냇가 주변에 버드나무가 흐드러진 곳이었다.

이러한 유천리의 자연풍경을 800년 전 청자장인은 버드나무와 갈대가 우거진 냇가를 헤엄치며 한가로이 노니는 물새의 모습으로 아로새겨 놓은 것이다.

그 시절 명품 청자를 만들어내기 위한 청자장인의 수고로움과 고단함을 버드내의 아름다운 풍경에서 위로받은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맑은 하늘빛 청자 속에 드리워진 물가풍경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아름다움과 아련한 애잔함이 느껴진다.  

넷째, 부안고려청자의 특징 중 하나는 이 지역에서 나오는 자토(자기를 만드는 흙)에 의해 나타나는 신비로운 비색에 있다.

고려청자는 유약 아래 새긴 문양을 드러나게 하기 위해 유약을 최대한 얇게 입힌다.

투명하고 얇은 유약 아래 비치는 상감 문양은 실루엣을 보는 듯 섬세한 맛이 감돈다.

그런데 부안의 청자 만드는 흙은 강진에 비해 철분이 약간 더 함유돼 있어서 굽게 되면 회색이 짙게 나온다. 

여기에 비색 청자유약을 입히면 회색 바탕흙 색깔이 유약 사이로 비쳐 나오게 되는데 청자의 전체적인 색조가 밝고 청명한 대낮의 느낌이 아니라 달빛이 어스름한 차분한 저녁하늘 빛을 연상시킨다.

드러낸 화려함과 청량함이 아닌 은근히 멋을 부린 귀부인의 기품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종잇장처럼 얇은 청자 태토의 두께, 바람에 날릴 듯 섬세한 문양, 유리처럼 투명한 가을하늘 색 유약 등에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비하고 복합적인 그 무엇인가가 부안 고려청자에는 숨어 있는 듯하다.    

이밖에도 가마구조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시설이 조사됐는데 유천리 3구역 12호와 6구역 27호 청자가마에서는 아궁이 앞쪽 좌측(서벽)에 유약제조에 필수적인 소나무재를 모아 두기 위한 공간으로 추정되는 감실(재칸) 구조가 부안지역 고려청자 가마에서 최초로 확인됐다.

이러한 감실구조는 효율적인 요업을 위한 고려 도공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또 부안고려청자유적의 성격과 위상을 유추할 수 있는 문헌자료와 유구가 발굴됐는데 유천리 3구역은 지리적으로 유천리 토성(柳川里 土城)이 서․북․동쪽의 구릉 가장자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토성 중앙부가 2015~2018년까지 조사된 지역이다.

유천리 토성에 관련된 기록으로는 부안 유천리 바로 인근 우반동에서 20여년을 살았던 조선시대 실학의 근간을 이룬 반계 유형원 선생이 1656년  편찬한 ‘동국여지지(東國與地誌)’ 부안현 고적조에 “안흥창이 유포(柳浦), 즉 버드내(유천)에 있고 고려 초에 창을 둬 부근 주현(州縣)의 조세를 거둬서 개경으로 조운했으며 지금 토성터가 남아있는데 둘레가 4리이다”라 해 지금의 유천리 주변, 토성이 있는 곳에 고려시대 조창 중 하나인 ‘안흥창(安興倉)’이 있었음을 시사하고 있다.

동국여지지의 내용에 따르면 안흥창의 위치는 유천리 토성 내부이고 2015~2018년 조사지역 일대일 가능성이 높으며 발굴된 건물지 중에서 1호와 3호는 청자를 만드는 작업장의 일반적인 구조와 전혀 다르고 ‘甲棟’, ‘官’ 등의 글자가 찍힌 기와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관(官)과 관련된 시설로 건물의 성격이나 위상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용과 봉황문양이 새겨진 높이 80㎝가 넘는 대형 매병·벽을 장식하는 타일·합·향로·수반·찻잔, 세계 최초로 산화구리 안료로 선홍색을 표현한 동화청자, 은은한 미색 바탕에 봉황이나 모란·국화 문양을 섬세하게 흑상감한 백자 등은 유천리 12호 청자가마터 일대가 고려 황실용 자기를 제작했던 특별한 곳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부안고려청자가 출토되는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고려 황궁터인 개성 만월대를 비롯해 고려시대 국립숙박시설인 파주 혜음원지(惠陰院址), 개성 명종 지릉, 강화도에 자리한 희종 석릉·순경태후 가릉·원덕태후 곤릉과 같은 고려 왕과 왕비의 릉, 강화 중성 및 주변의 고려시대 건물지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처럼 훌륭한 예술성과 독창성을 갖춘 부안고려청자와 이것을 만들어낸 방대한 유적을 전 세계에 알리고 문화유산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긍심을 갖고 꾸준한 관심과 깊은 애정으로 부안고려청자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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