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외우며

오피니언l승인2020.10.28l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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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근식 국민연금공단

퇴근길이었다. 마주 오던 사람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디서 보긴 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일까? 낯선 도시 전주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직장동료뿐인데 어느 실에 근무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목례로 반가운 척하며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지난주 모임에서 있었던 일이 기억나 얼굴이 붉어졌다.
 지난주 중학교 친구 모임에서였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식당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옆 테이블에 지인이 있었다. 지난달 아파트 총회에서 만난 사람인데 옆 동에 살고 있다. 우리는 회의를 마친 뒤 명함을 교환하며 인사를 했었다. 낯선 곳에서 지인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 공손히 인사를 하며 악수까지 청했다.
 그는 대뜸 누구시죠 라며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 누군데 나를 아는 척 하느냐는 표정이다. 동행한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 아는 척이라도 해 주었으면 섭섭함이 덜 했을 터인데. 난생 처음 본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당황스러워하자 갑자기 술집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왁자지껄 떠들던 친구들이 실없는 나를 보고 조용해졌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이 되었다. 당황스럽고 섭섭했다. 괜히 내가 아는 척했다는 후회가 되었다. 퇴근길에 직장동료를 만난 그날, 모임에서 내가 겪은 섭섭함을 주지 않으려 일부러 밝은 표정으로 목례를 하며 아는 척을 한 것이다.
 나는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사물의 이름 역시 마찬가지다. 가끔 몇 년간 같이 근무한 직원 이름이나 오래된 친구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때마다 건망증이겠지 하며 내 스스로 위로하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이름을 잊어버려 당황스러울 때가 정말 많다.
 이름 때문에 가장 당황스러운 곳은 직장휴게실이다. 출퇴근 때처럼 그냥 스쳐가는 길이라면 인사는 목례 정도만 해도 충분한데, 직장휴게실은 다르다. 잠시 쉬는 곳이긴 하지는 입장이 곤란할 때가 있다. 상대가 나를 알고 내가 상대를 모를 때가 곤혹스럽다. 목에 걸린 신분증이 뒤집혀서 직급과 이름을 확인할 수 있으면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데, 와이셔츠 주머니에 신분증을 넣은 직원을 만나면 곤혹함을 피할 방법이 없다.
 그날 모임에서 값비싼 경험을 했다. 아파트 총회에서 인사를 나눈 사람과 오해를 풀고 사과는 받았지만, 섭섭한 마음이 한참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난 뒤부터 나는 직장 동료의 이름을 외기 시작했다.
 요즘은 출근을 하면 직원이름을 외운다. 적어도 하루 삼십 분 정도는 직원 이름 외우는 시간에 투자한다. 조직도 사진을 보면서 바로 옆에 있는 부서 직원부터 한명씩 한명씩 이름을 적어가며 외고 있다. 오늘은 10명의 이름을 외고 내일은 오늘 외운 10명을 반복하고 추가로 또 10명의 이름을 외운다. 그다음 날은 20명을 반복하고 새롭게 10명의 이름을 외운다.
 사무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름을 모두 외울 수는 없다. 사무실에 천명 이상이 근무하고 있으니 어쩌면 내가 전출하기 전까지 절반도 외지 못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모임에서 내가 겪은 섭섭함을 남이 겪는 것을 줄여보고 싶다. 적어도 직장휴게실에서 이름을 몰라 도망 나오는 행동을 막아보고 싶다.
 퇴근길에 만났던 직원을 다시 만났다. 업무 협의차 다른 실에 갔는데 그가 있었다. 얼른 명패를 확인한 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고 아는 척을 했다. 며칠 전 어디를 가는 길이냐며 물어보았다. 그는 자신을 기억해 주는 것이 좋은지 밝은 표정으로 대답을 한다. 대화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기를 기억하는지 그가 되묻는다.   나는 오늘 휴게실에서 이름을 몰라 도망가는 건수 하나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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