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린 전북도의회 문화건설안전위원장

몇 년 전 국악인이 모인 자리에서 작은 논쟁이 있었다. 논쟁의 당사자는 원로 국악인과 국악 평론가로, 연세 지긋하신 소리꾼은 국악의 전통적인 원형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던 반면, 국악 평론가는 국악에도 변화와 혁신적인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통과 원형을 강조했던 분의 논지는 변화만 추구하다 보면 소리의 전통적 형식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었고, 국악평론가는 전통만 고수하는 것은 오히려 국악의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듣고 있자니 이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저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의 논쟁을 지금에 와서 복기하게 된 계기는 최근 커다란 화제가 되고 있는 이날치밴드 영상을 접하게 되면서다. 해당 영상은 한국관광공사가 국내 주요 관광도시를 홍보하기 위해 제작한 것인데 최근까지 조회수가 무려 2억 7천만 회가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인 핫클립으로 부상했다.
영상에 등장하는 이날치밴드는 중독성 있는 가사와 멜로디 그리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의상과 몸짓으로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한국적 전통색이 물씬 풍기는 음악인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묘하게도 서구의 감성이 엿보이기도 한다. 전통이면서 혁신적이고, 혁신적인데도 전통색을 잃지 않고 있다. 물론 파격은 덤이다.
이날치밴드를 보고 나서 당시 논쟁을 떠올려 보니 전통과 혁신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마치 수도승이 평생 천착하는 화두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하긴, 여기까지는 전통이지만 그 너머부터는 변화와 혁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술 장르라는 게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 정도는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통을 고수하려는 완고한 태도 없이 변화와 혁신만을 수용하는 게 의미 없는 일인 것처럼, 혁신을 거부하면서 전통에만 매몰되는 것 역시 무가치한 태도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날치밴드는 전통이라는 몸통에 어떻게 변화와 혁신이라는 옷을 입혀야 되는 것인지를 보여준 흥미로운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날치밴드 외에도 국악의 다양한 하위 장르별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시도들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얼마 전까지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던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이 또 다른 대표적 사례다. 공중파 방송에서 보기에는 다소 민망한 의상을 입고 화장까지 한 채 들려주는 이희문의 음악세계는 이날치밴드를 통해 경험하는 것과 공통점이 있다.
누가 봐도 민요창법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에 익숙하게 들리기는 한데 외형이 워낙 기괴해 보인다. 게다가 반주음악에 동원되는 악기는 기타와 베이스, 트럼펫 등 양악기 일색이다. 그래서인지 익숙함에 기댄 채 맘 놓고 즐길 수 없는, 긴장감마저 감도는 음악이다.
얼마나 파격적인 시도인지는 그가 미국의 대표 공영라디오 방송 NPR의 공연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됐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음악세계가 단지 파격적인 외형에만 기댄 것이었다면 그가 국내 방송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미국의 유명 방송 공연무대에 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날치는 조선후기 명창이자 줄타기 명인이었는데, 날치라는 이름은 줄을 탈 때 몸이 날래서 얻은 별칭이라고 한다. 이날치밴드의 젊은 국악인들이 어떤 연유로 그분의 이름을 밴드 명칭으로 차용하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음악세계가 전통과 혁신의 경계에 서서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 밴드 이름마저도 제격으로 얻어낸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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