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교무, 강살리기익산네트워크 공동대표

노마스크 트럼프와 대조를 이룬 바이든이 결국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되었다. 아직도 쉽게 승복을 모르는 트럼프의 끈질긴 아쉬움이 낮선 미국의 민낯을 느끼게 하지만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저평가하고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등 방역지침을 제대로 준수하지 않아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었다. 또한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마스크 착용을 권장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 했다. 다른 이의 모습에 관심이 적고 항상 자신의 모습이 중요하기에 모든 판단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사회? 지구촌의 팬데믹(Pandemic)상황에서 바라보니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유럽과 미국사회에 좋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았다. 프랑스가 한 달 동안 전국 봉쇄령을 내렸고 독일도 부분 봉쇄를 하고 미국은 많은 곳에서 극장 카페 등 실내 공공시설 이용을 금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북반구의 날씨가 추워지면서 미국의 코로나 감염은 10만명을 넘어서는 등 새로운 감염자 수가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의 숙소를 정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열차를 이용하였다. 코로나 위험을 피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움직이는 바쁜 하루일정이였기에 소독제와 마스크를 여러장 준비하고 평소보다 일찍 서둘렀다. 열차를 타기위해 빨리 걷다 보니 숨이 찼고, 단단히 준비한 KF94마스크는 드디어 가뿐 호흡을 소화하지 못하고 답답함을 주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나도 모르게 마스크를 코 아래로 내렸다가 눈치가 보여 숨쉬기 편한 덴탈 마스크로 바꾸었다. 아내도 한참을 고민하더니 덴탈 마스크로 착용하였다. ‘최소한의 방역은 되니 괜찮을 거야’ 하는 위안으로 우리는 기차에 올랐다. 차창에 기대어 생각하니 내 마음이 많이 어긋나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간 ‘턱스크’ ‘코스크’ 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서울 바이러스와 전쟁하듯 준비하던 아침이 생각이 난 것이다. 나 역시 안전을 위반한 사람이 되었고, 잠시지만 내가 비난했던 바로 그 사람이 된 것 이다. 사람이란 본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일까? 조용히 나를 생각해보니 내 모습에 관대하고 합리화하는 자신을 본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더 잘 알고 있고, 다른 사람은 현재의 내 상황을 알 수 없기에 나는 뭔가 다르고 특별한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바꾸어 생각하면 다른 사람에게도 분명 그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을 터인데 나는 잘 알지 못하기에 그들에 대해서 너무도 가볍게 싸잡아 무시하거나 비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태산은 제자들에게 ‘내가 못 당할 일은 남도 못 당하는 것이요, 내게 좋은 일은 남도 좋아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섭섭하거든 나는 남에게 그리 말고, 내 마음에 만족하거든 나도 남에게 그렇게 하자. 이것은 곧 내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생각하는 법이니, 이와 같이 오래오래 공을 들이면 너와 나의 간격이 없이 서로 감동과 화합을 얻으리라.’<대종경 인도품12>하였다.  예수는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태복음7장> 하였다. 로망롤랑은 <위대한 영혼 마하트마>에서 물레의 성자 간디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어린애처럼 단순하고 적에 대해서조차 온화하고 정중하며 맑고 깨끗한 지성의 사람이다. 몸가짐이 겸손하고 정중하기 때문에 주저하고 머뭇거린다고 생각될 정도다... 이 시점에 우리는 간디처럼 자기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still small voice)’에 귀를 기울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숙한 사람은 밖으로 향하는 마음의 방향을 내면으로 돌려 나를 먼저 돌아보고 반성하며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좋은 의미로 ‘내 마음을 자세히 볼 수 있다면!’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볼 수 있다면!’ 그 역시 우리들의 다양한 모습으로, 개성이고 자산이고 창의성과 행복의 발현이기도 하다. 다른 이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기 전에 잠시 멈춰 나 스스로를 먼저 살피다보면 우리한국이 미국보다 좋은 이유가 되고, 나와 세상이 모두가 부처가 되는 기적(奇蹟)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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