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모든 평가는 평가자의 지각에서 출발한다. 평가자는 피평가자를 보고 느끼는 만큼만 평가한다. 느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가의 결과가 나빴다면 누구 탓일까? 상대가 평가를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느끼도록 한 탓이다. 분명 내 탓이다. 그것이 설령 오해였더라도 오해를 하도록 한 내 탓이다. 그럼 평가를 바꾸기 위해 누가 노력을 해야 할까. 상대가 아니라 내가 노력해야 한다. 평가자는 내 행동을 바꿀 때만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사람끼리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모두 이러한 명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직장에서 동료 직원 두 사람이 동일한 잘못을 했다고 가정해 보자. 신뢰가 있었던 직원이면 실수겠지 하면서 두둔하지만, 신뢰가 없는 직원이면 그럴 줄 알았다며 쉽게 단정지어 버린다. 이 역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당사자인 내 행동 탓이다.
 옛날 한 관리가 먼 객지에서 직장생활하고 있었다. 아내에게 편지를 받았다. 두 달 전 관리가 보낸 편지의 답장인데, 내용은 이러하다. 당신의 글을 받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흰 종이입니다. 아마 당신께서 이 몸을 말할 수 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을 백지 속에 담으셨습니다.
 관리는 답장을 받고 어리둥절해서 주위를 살펴보니 아내에게 쓴 편지가 다른 곳에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관리는 봉투에 편지를 넣지 않고 백지를 넣어 보낸 것이다. 남편의 실수가 오히려 아내에게 깊은 기쁨을 가져다준 셈이다. 실수가 행복한 오해로 된 사례지만, 전제 조건이 있다. 상대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지난주, 아내와 전화를 하면서 막내의 대학 진학 얘기를 했다. 이번 수능시험에 기대했던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한 결과가 나왔다. 지원할 대학을 이야기하면서 아이가 마치 합격한 것 마냥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길래, 합격하고 이야기하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아내는 나를 닮은 탓이라며 하면서 도리어 내게 핀잔을 했다. 며칠 전 나는 자격증 시험이 있었는데 떨어졌다. 시험 성적이 커트라인 근처라 합격할 수도 있다며 아내에게 얘기한 적이 있다. 아내는 내 말에 신뢰가 없었던지 결과를 보고 이야기하라면서 핀잔을 했다. 아내의 핀잔이 섭섭하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아내가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내가 평소 그렇게 보인 탓이다. 내 탓이다.
 백지 편지를 받은 관리 부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답장을 두 달 뒤 받았으니 아마 일 년에 한두 번 남편을 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글의 내용으로 보아 아내도 남편도 서로 많이 그리워했음은 분명하다. 늘 그리워하던 남편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빈 백지만 나왔다. 신뢰가 없는 부부였다면 화를 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믿음이 강했기에 아름다운 답장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관리의 아내는 빈 백지를 수려한 편지글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해석할 수 있었다. 글로 적을 수 없이 그리움이 너무 많아 백지로 보냈다고 감격했던 것이다.
 얼마 전 계 모임에서 장부 잔액과 통장 금액이 맞지 않았다. 총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잠시 언쟁이 벌어졌다. 한 친구가 분명 돈을 다른 곳에 썼을 것이라고 하고 대부분 친구는 총무 성격상 그럴 일이 없다고 했다. 총무는 평소 신뢰가 있던 친구였다. 한참 언쟁을 하고 있는데 총무가 들어왔다. 신뢰를 두지 않았던 친구가 총무에게 따져 물었더니, 친구는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내밀었다. 바빠서 입금하지 못해 봉투에 넣어두었다고 꺼내 놓았다. 금액을 확인해보니 장부 잔액과 정확히 일치했다. 오해한 친구의 사과와 함께 잠시 한바탕 웃고 지나갔다. 이것 역시 평소 신뢰가 있었기에 다른 친구들이 오해하지 않았다.
 한해를 정리하는 연말이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새해 연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돌아보며 마무리하는 시기이다. 계획했던 일들이 실패했을 수도 있고, 희망했던 것을 성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시 피평가자가 되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 상대를 원망하지 말라. 원인은 분명 내 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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