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전 논밭 사이 초라하게 남아 있던 미륵사지 석탑.

석탑이 서있던 이곳에 미륵사가 있었다. 왕실의 안녕과 중생의 불도를 기원하며 7세기 건립된 미륵사는 통일신라 시기에도 거대한 불교 사원으로 번창했으며 고려 시대에도 중요한 불교 사원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조선의 불교 업악 정책으로 17세기까지 법등을 이어 갔지만 이후 미륵사는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졌다.

그러던 1910년. 일제의 문화재 조사사업으로 동아시아 고대사원의 면모가 드러났다. 일제가  초기 조사 기록으로 남긴 사진이 공개됐다.

국립익산박물관(관장 신상효)은 100년 전 미륵사지를 볼 수 있는 테마전 ‘100년 전 사진에 담긴 미륵사지 1,300년’을 개최한다.

내년 3월 2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미륵사지를 촬영한 100년 전 사진 전모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1915년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수리 시 쓰였던 석탑 보강철물(H빔)과 콘크리트 부재, 공사 도면 청사진을 최초로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시작부터 광복 전까지 문화재 조사를 위해 익산을 찾은 일본인 학자들은 사진과 글로 미륵사지를 담았다. 이 기록은 당시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어 자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전시에 사용한 흑백사진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필름이 나오기 전  촬영한 유리건판(Gelatin dry plate) 사진을 고화질로 스캔한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인들이 유리건판으로 촬영한 전국의 우리 문화재 사진 38,170점을 소장하고 있다. 전북지역을 촬영한 사진은 307점이 남아있는데, 익산지역 사진 84점 중 미륵사지는 27점이 전해진다.

전시는 모두 3부로 구성했다.

제1부 ‘미륵사지, 세상에 드러나다’는 1910년 일본의 문화재 조사사업으로 동아시아 고대사원의 면모가 드러난 미륵사지의 첫 사진을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문서에 드러난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사 내용과 평가 기록을 바탕으로 미륵사지가 당시 어떤 모습이었는지 살펴본다.

제2부 ‘석탑, 시멘트로 보수하다’는 첫 조사 후 5년 뒤인 1915년 미륵사지 석탑을 응급 수리한 기록을 소개한다. 밑그림이 남아있는 설계도면의 청사진뿐만 아니라 미륵사지 석탑 수리 과정에서 사용된 보강철물(H빔)과 콘크리트 부재는 당시 일본 문화재 수리 기술의 시험 무대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3부 ‘미륵사지, 가까이 보다’는 100년 전 일본인들이 바라본 미륵사지의 모습을 소개한다. 당시 조선인을 기준(Human-scale)으로 삼아 문화재와 함께 촬영해 크기를 가늠하였다. 때마다 석탑을 같은 방향에서 촬영해 과거로부터 변화하는 옛 미륵사지 풍광은 놓치지 말아야 할 볼거리이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을 찾을 수 없는 관람객들을 위해 ‘3D VR 온라인 전시실’, ‘미륵사지 다른 그림 찾기 게임’ 등 다채로운 온라인 전시 콘텐츠들을 박물관 홈페이지에 공개하여 집에서도 전시를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한편 국립익산박물관은 지난 4년간 일제강점기 익산지역 문화재 기록에 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2017년에는 <일제강점기 사진으로 보는 익산의 문화유산> 보고서를 발간하였고 이번 테마전은 그 결과물을 토대로 기획했다.
/이병재기자·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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