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일 전라북도의회 부의장

2020년은 모두가 잊고 싶은 악몽의 해였지만, 그나마 기억하고 싶은 일도 있었다. 지난 2020년 12월, 지방자치법 개정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무려 32년 만의 개정인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강산이 세 번 바뀌는 긴 세월이었다. 그동안 지방자치법은 철저히 부동의 자세를 보였다. 낡고 오래되기도 했지만, 시대와 세월의 변화와 흐름에 걸맞지 않은 옷이었다. 마치 성인의 몸에 어린이의 옷을 입혀 놓은 형국으로, 입는 사람도 불편하고, 보는 사람도 불편했다.
불편한 걸 알면서 왜 이리 늦었냐고 하면 할 말은 많지만, 구구절절 풀어놓아 봐야 입만 아플 뿐이고, 어느 노래의 가삿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기억해도 좋고, 잊어도 좋을 것이다. 이제부터 성인의 몸에 맞는 성인의 옷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걸치느냐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이후 중앙·지방정부는 만족스럽지는 않아도 조금씩 기능과 역할에 맞는 권한이 이양돼왔다. 물론, 아직도 온전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있는 권한이 더 많이, 더 빨리, 더 폭넓게 이양돼야 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방향과 가치에 대해서는 중앙·지방정부가 함께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의 문제일 것이며, 현 정권 즉, 문재인 대통령도 누차 제대로 된 분권과 자치를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권한은 더 커지고, 역할과 기능도 확대돼야 한다고 천명했기 때문에 대세에는 지장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정부는 국회가 감시·견제하면서 적절하게 통제하고 관리하고 있지만, 문제는 지방정부다.
지방의회가 지방정부를 감시·견제하고 있지만, 국회만큼의 통제 권한이 없다. 기껏해야 사전조치로 예산안 심의·의결이고, 사후조치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하는 정도다. 사전과 사후 예방 및 점검 수단이 충분치 않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무기력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방의원 당신들의 역량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질타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이상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감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는 것을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싶다.
지방의회의원은 국회와 달리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인력의 기본적인 속성과 구성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지방의원은 오로지 혼자 모든 일을 감당해야 한다. 주민을 만나고, 민원을 챙기고, 집행부를 상대하는 것 등 모든 활동을 스스로 해야 한다.
출발부터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을 같은 경쟁상대로 보는 것은 불공정한 인식이다. 의회사무처 직원이 있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의회사무처 직원들이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무적 정책적 보좌라기보다는 행정업무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의회사무처 직원들의 인사권은 집행부에 있기 때문이다. 길어야 1~2년 근무하다가 집행부로 돌아가야 하는 직원의 입장에서는 행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그래서 의회사무처 인사권은 의회가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의 주요 골자로 사활을 건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정책지원 전문인력 도입도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가능하게 됐다.
순차로 진행되는 만큼, 당장의 큰 변화를 꾀할 순 없지만, 상임위원회별로 전문가를 확충하는 길이 열렸다. 한층 더 전문적이고 세밀한 의정활동 보좌가 가능함으로써 행정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 향상으로 시민들이 전문인력 도입의 수혜를 입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만, 전문인력 도입에 따른 의원 개인이나 정당의 이해관계가 개입할 여지를 없애기 위해 선발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출발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인하여 이러한 제도가 안착하기 위하여 왕성한 의정활동으로 전라북도민의 삶에 기여하고, 전북 발전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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