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시설물의 합리적인 관리·운영방안 없이 무턱대고 공공시설물을 추가로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공익성 증진과 다양한 욕구 해소를 위해 공공시설물이 필요하지만, 자칫 예산낭비로 이어져 재정적 부담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제 구실 못하는 공공시설, 적자도 수십억
전북의 대표 공공시설물로 꼽히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전북도립미술관의 경우, 각각 1000억원, 220억원의 건립비가 소요됐다.

2020년 지방재정공시를 보면 한국소리문화전당의 1년 운영비용은 61억2400만원에 달하는데, 순수익은 300만원에 불과했다. 도가 직영으로 운영하는 도립미술관은 1년에 16억 7600만원의 운영비를 쏟고 있지만, 순수익은 6800만원에 그쳐, 16억 800만원의 적자를 봤다. 이외에도 일부 사회복지, 수련시설 등에 대한 민간위탁비용까지 포함하면 공공시설물 운영 적자는 더 불어날 수 밖에 없다.

17일 도에 따르면 2020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이용자수는 3만2950명으로, 일일평균 90여명이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립미술관은 2만7352명으로 하루 평균 74명이 찾았고, 지난해 방문자수는 2092명으로 집계된 전북예술회관의 평균 방문자 수는 5명밖에 없었다.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이용자가 줄어들었다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건립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향후 공공시설물을 건립할 경우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이 아니라 설립 타당성과 효율성을 제대로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결국 또 용역 절차 진행
도는 사장되고 있는 한국전통서예의 명맥을 잇기 위해 '세계서예비엔날레 전용관(가칭)' 건립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전용관 건립을 위해 국비 5억원을 확보한 도는 지방비 2억원을 보태 세계서예비엔날레 전용관 건립 타당성 용역을 진행할 예정이다.

올 하반기(11월경) 완료될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전용관의 효율적인 운영방안 및 건립 타당성을 마련해 완공까지 국비를 확보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용역을 통해 국비 확보 및 사업의 타당성을 마련하겠다는 발상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용역에서 제시한 방안에만 매몰돼 정책적 판단을 놓칠 수 있어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무조건 짓기 위한 용역 절차가 아닌, 돈 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는 공공시설물의 건립이 정말 필요한지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되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또 시설물이 제대로 활용될 수 있도록 콘텐츠 발굴에도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중요 무형문화재 활성화를 목적으로 건립된 '국립무형유산원', 한지의 세계화를 꿈꾸며 지어진 '한지문화센터', 한문화 정책 수행을 목적으로 설립된 '한국전통문화전당'까지 수십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돼 건물이 세워졌지만, 콘텐츠 부족으로 지역에서 여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예술인 입장 차 뚜렷
3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세계서예비엔날레 전용관'에 대해 전북 도내 예술인들의 입장 차이도 극명하게 나뉜다.

한국예총 전북연합회 백봉기 사무처장은 "한 분야의 사업을 위해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며 "한 분야를 위한 공간보다는 예술인 모두가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복합공간인 예술회관 짓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백 처장은 "미술작품을 보관할만한 수장고 공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일년에 1번 치러질 행사를 위해 전용관을 건립하는 게 맞나 싶다"고 덧붙였다.

현재 예술단체들은 마땅한 공간이 없어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 있는 공간을 임대해 사무실 겸 공연 연습장, 전시장 등으로 활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반면, 세계서예비엔날레 전용관 건립이 전북만이 갖고 있는 서예라는 문화자산을 국가적 브랜드로 키워갈 수 있는 단초가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병기 세계서예비엔날레 자문위원 겸 전북대 교수는 "5~6억원의 적은 예산으로 25년 넘게 세계서예비엔날레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는 세계성을 확보할 때"라며 "전용관이 생기면 중국 중고등학생들 수행여행 유치도 가능해 경제적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병기 교수는 "중국은 현재 중고등학생에게 서예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치고 있고, 서예가 살아난다면 한지산업도 동반 성장할 수 있다"며 "무형유산원처럼 하드웨어만 덜렁 짓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북에서 다양한 문화정책들이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동네 잔치 수준에 불과했다고 꼬집은 김 교수는 "이제는 선택과 집중으로 전통 서예를 전북이 국가적 브랜드로 육성해 나가야 한다"며 "나눠먹기 식의 예산분배로 도내 예술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만큼, 브랜드 가치가 있고 서계적으로 관심이 높은 서예에 집중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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