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이라는 말은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가 그의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18세기 이전까지는 인간의 과학수준이 도구를 만들고 소나 말 등에게 힘든 노동을 대신하게 하는 ‘자연의 물리적 이용’에 한정됐다. 18세기 초 인간은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사용하면서 제조공정에 일대 혁신이 일어난다. 이것을 토인비는 산업혁명이라 명명했고, 지금은 4차 산업혁명시대이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빅데이터의 이용 등으로 ‘인간의 물리적 노동과 인지 능력’을 기계가 대신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판단이나 평가 능력’까지 기계가 대신하게 됐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수많은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 주목받고 있는 몇 가지 용어를 소개하자면, 전 세계 상위 기업 중 플랫폼으로 성공적 변신을 한 기업가와 투자자를 일컫는 ‘플랫폼 소유자’, 대중의 감정을 요리하는 정치 9단, 타고난 예체능 천재, 창조적 전문가인 ‘플랫폼 스타’, 플랫폼에 종속돼 프리랜서처럼 일하며 살아가는 절대 다수의 시민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자가 진화하는 지성을 지닌 정보시스템으로서 법인격을 지닌 인공생명체인 ‘인공지성’,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인간을 뜻하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등이 있다. 프레카리아트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서 직업 정체성을 가지지 못하고 밀려난 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공대 연구팀이 발표한 ‘미래도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90년에는 99.997%에 해당하는 일반시민들이 불안정한 단순노동자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는 ‘스마트폰(smartphone)’과 인류를 의미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합친 말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흔적을 남긴다. 오프라인에서의 흔적은 본인이나 다른 사람들이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가 없다. 그 사람의 흔적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관심분야나 행동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도 없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무엇을 찾을 때, 기록할 때, 물건을 사거나 팔 때 스마트폰이나 PC를 사용한다.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에 의해 스마트폰과 PC에 우리의 행동이 그대로 기록된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콘텐츠나 플랫폼 사업들은 그러한 데이터 정보를 바탕으로 그 사람의 행동패턴이나 심리를 파악한다. 콘텐츠나 플랫폼 사업자들이 고객이나 이용자들의 정보를 알고서 이들이 유튜브나 관련 사이트 창을 열었을 때 관심 있어 하는 분야나 자주 찾는 분야의 관련 정보나 동영상을 추천한다. 우리는 깜짝 놀라면서도 편리함 때문에 그 플랫폼을 더 자주 찾게 된다.

포노 사피엔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포노 사피엔스는 모든 정보 검색이나 물품 구매, 일상생활을 스마트폰을 통해 하다 보니 스마트폰이 없으면 살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물건을 구매한 사람에게는 그가 남긴 데이터에 따라 고객이 좋아 하는 추천 상품을 제안한다. 콘텐츠나 플랫품 사업자들은 이러한 데이터 정보를 활용해 고객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 찾은 것을 더 많이 보여준다. 고객들이 자신의 콘텐츠나 플랫폼에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한다. 그러다 보니 포노 사피엔스는 특정 콘텐츠나 플랫폼에 대한 편향성이 점점 더 강화된다.

이러한 편향성은 상품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진보와 보수의 색깔을 가진 사람들도 처음에는 플랫폼 등에서 자신들의 관심분야를 두루 찾아본다. 그런데 콘텐츠나 플랫폼 사업자들이 알고리즘에 의해 이들의 성향을 파악한 후 이들이 듣고 싶은 말이나 논조의 글이 올라오는 사이트나 유튜브 동영상을 주로 추천한다. 이들은 추천된 유튜브를 중심으로 몰입해 보고 듣다 보니 사상의 편향성이 확대된다.

유명한 심리학 실험인 ‘보이지 않는 고릴라’ 영상이 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선택적 지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고 설명할 수도 없는 수많은 착각과 오해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눈앞에 고릴라가 나타났지만 다른 부분에 관심을 두다 보면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 사람마다 똑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이해하는 폭이 서로 다르고,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감동을 느끼는 부분이 다르다. 차를 운전하다 다른 생각에 몰입하거나 스마트폰을 조작하면서 앞의 차량이나 사람을 보지 못할 때, 같은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이 나오는 것도 같은 이치다.

사물과 사고에 대한 편향성은 누구나 갖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주변과 차단된 또는 선입관속에서 지나치게 몰입됐을 때이다. 포노 사피엔스에게는 편향된 사고를 형성하게 하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보니 보이지 않는 고릴라 현상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편향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기 싫은 것도 보고, 듣기 싫은 것도 듣는 힘이 있어야 한다. 깊이 사고하면서도 넓게 주변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문제를 혼자만의 깊은 고민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주변과 늘 교류하고 소통해야 편향성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