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며느리에게 주어진 역할 중 하나가 불씨 지키기였습니다.
화로의 불씨를 꺼트리는 일은 몹시 부끄러운 일로 여겨졌습니다. 게으르다는 말까지 들어야 했지요.

시베리아 시호테알린산맥을 탐사한 기록을 담은 ‘데르수 우잘라’라는 책이 있습니다.책에는 준비물을 챙기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준비물 챙기기는 생존과 직결된 일로 성공적 탐사를 위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자는 성냥을 가장 필요한 물품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습기에 노출되지 않게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죠. 성냥이 습기에 노출되면 단 한 번의 부주의만으로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책에 담긴 노하우는 뭘까요? 바로 나무상자에 보관하는 겁니다. 나무는 습기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습해도 성냥을 건조하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 또한 희망의 불씨를 믿음으로 지켜내는 일 입니다.

친구들과 ‘귀하게 쓰는 그릇’에 대해 대화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릇에 빗댄다면 여러분은 어떤 그릇인가요?” 사람들의 대답은 제각각 입니다.

어떤 사람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라 하고, 뚝배기와 같다는 이도 있습니다.

내 생각을 묻는 친구의 질문에 크게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생활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희망이 담긴 그릇, 바로 겨울 김칫독이었습니다. 김치를 땅에 묻을 때 쓰는 항아리 말입니다.

김치는 끓여 먹고 볶아먹고 날이 궂으면 부침개도 해 먹고, 만두를 빚어 이웃과 나누기도 할 때 꼭 필요합니다.

겨울을 지내는 반양식이죠. 땅에 묻은 항아리에 보관하는 김치는 맛과 신선함에 있어 김치냉장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특별했습니다.

겨울 김칫독 같은 사람을 생각해봅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추운 겨울 땅속에서 묵묵히 겨울 양식을 지켜주었던 김칫독, 온 나라가 걱정과 두려움에 빠져 있는 이 겨울, 묵묵히 희망을 품고 지켜내는 겨울 김칫독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오늘 이 어려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거룩한 사명 또한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모두 '희망의 불씨'를 꼭 지켜냅시다.!
/고강영 한국문인협회장수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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