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공화국  시절 오빠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유족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고인들이 세상을 떠난 지 무려 40년이 넘었지만 유가족들은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고 진상규명을 호소했다. 유가족들은 2일 기자회견을 갖고 고 한종호는 1971년 5월에, 고 한보만은 1974년 1월에 각각 당시 집권당이던 공화당 정치깡패에 의해 타살 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진실화해위원회에 두 오빠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 선거 운동을 도운 고인이 폭해 당해 숨졌는데 고인의 학적부와 입퇴원 기록, 화장기록이 삭제됐거나 확인하기 어려웠고 누군가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종호씨가 목숨을 잃은 1971년은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이다. 당시 선거는 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승리했지만 부정 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독재와 부정부패로 국민들에게 외면 받던 공화당이 박정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사실은 이미 밝혀진 일. 국민들의 정권교체 희망으로 떠오른 김대중과 신민당에게 가해진 압력은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이다. 그럼에도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김대중 후보가 사실상 이겼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민심이반이 심했던 시절이다.

당시 정보기관 등 권력기관이 무소불위의 행태를 보인 시점이다. 권력기관의 횡포와 기관의 비호를 받는 친 정부세력의 힘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준이었다.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는 인사들이 의문사를 당한 것이 여럿 건이다. 심지어 김대중 야당 대통령 후보를 납치해 살해하려는 시도가 있었을 때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공포정치가 판을 치던 때였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그땐 그게 현실이었다.

유가족이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청한 일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당시 상황에서 경찰에게 철저한 수사를 요청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당시 부모들은 자식이 야당 대통령 선거 운동을 하다가 여당 깡패에게 맞아 숨졌다는 사실을 밝혀달라는 요청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짐작했을 터다. 이제라도 두 고인의 죽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억울한 죽음이 있다면 그 진실을 밝혀져야 한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그 억울함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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