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가 체포되어 순국한 전봉준과 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 서훈을 촉구한 책이 출간됐다.

박용규는 <전봉준 최시형 독립유공 서훈의 정당성>(인간과자연사)에서 독립유공 서훈에서 항일 농민이 양반에 비해 차별 받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저자는 갑오의병(1894년 8월), 을미의병(1895년) 등 의병 운동 참여자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가 지금까지 2천여 명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했는데 이 사이에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1894년 9월)은 국가보훈처가 서훈대상에서 지금까지 누락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는 국가보훈처가 서훈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스스로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일 독립운동인 2차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항일 투쟁의 총사령관이 전봉준이었고, 최고 지도자가 최시형이었다. 전봉준·최시형과 함께 1894년과 1895년에 걸쳐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나 싸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항거하였고, 그 반대와 항거로 인하여 순국하였다.

같은 시기 일본군을 몰아내다가 순국한 을미의병(1895)·을사의병(1905)·병오의병(1906)·정미의병(1907) 참여자들(양반 유생)은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62년부터 독립유공 서훈을 받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2,671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다.

이에 반해,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항일 농민(전봉준 등)은 지금까지 단 한명도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불공평과 모순이 시정되기를 역사학자인 저자는 바라고 있다.

이 책에서는 2차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가, 일본군에 의해 총살, 사살, 작두형, 화형을 당해 서거한 순국자(111명)와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체포되어 총살을 당한 순국자(6명)와 일본군에 항거하다가 자결한 순국자(2명) 등 총 119명의 명단을 뽑아 정리했다.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다가 순국한 자는 순국선열에 해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독립유공자법)에 비추어 보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독립유공자가 되고도 남는다.

2차 동학농민혁명과 의병운동의 공통점은 적극적인 국권 수호 운동, 항일무장투쟁, 일본의 침탈에 맞선 반침략·반외세 민족운동이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차이점은 항일 투쟁의 주체가 농민이냐, 양반 유생이냐 에서 갈렸을 뿐이다. 양반 유생이 주도한 의병운동은 서훈하고, 항일 농민이 주도한 2차 동학농민혁명은 서훈하지 않고 있는 것은 매우 불공평한 처사이다.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전봉준과 최시형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이 일본군을 몰아내는 항일 구국 투쟁을 전개하였다는 내용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보훈처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해 독립유공자로 포상을 하여 주기를 촉구하고 있다.

저자는 “전국에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후손들이 곤궁함속에서도 자부심 하나로 버티며 살고 있다. 참여자들에 대해 곧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독립유공 훈장’을 추서해 주는 것이 이들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첫 걸음이다”고 말했다.

박용규는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사학과 박사로, 한글학회 연구위원과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저서로 <조선어학회 항일 투쟁사>(2012), <우리말 우리역사 보급의 거목 이윤재>(2013), <조선어학회 33인>(2014) 등이 있다.
/이병재기자·kanadasa@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