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 전북농협 본부장

지난 21일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인 입하(立夏)와 망종(芒種) 사이의 소만(小滿)이었다. 소만은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다.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하며 식물이 성장한다. 보리 싹이 성장하고, 산야의 식물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빨간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소만에 모내기가 시작돼 연중 가장 바쁜 계절로 접어든다. 예전 이 무렵은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연명하던 시기이다. 현재 농업·농촌이 처한 현실이 ‘보릿고개’와 같지 않을까?

우리 농업과 농촌은 5천만 국민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식탁을 책임져 왔다. 또한, 식량안보, 환경보전 등 누구나 제한 없이 누릴 수 있는 공익적 기능을 창출하고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발전시키는 등 대한민국 발전의 근간이 되어 왔다.

하지만, 농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이하 고향세)’ 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법안 통과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언제 통과될지 기약이 없다. 농촌지역 지자체, 농민을 비롯한 농업계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답답하다.

고향세는 출향인사 등이 자신의 고향이나 희망하는 지방자치단체를 지정해 자발적으로 일정액의 기부금을 내면, 세제 혜택이나 해당 지역 농·특산물로 답례품을 제공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지자체는 기부금을 활용해 주민의 복지·문화 등 지역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열악한 재정과 인구감소  등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농촌지역 지자체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이다. 더불어, 농촌 지자체가 지역 농·특산물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와 농가소득 제고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이렇듯 고향세는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확대를 통해 지역경제를 살리고 주민들의 복지 확대로 일자리 창출과 인구 증가로 이어져 농촌이 활력을 되찾게 되고 이는 다시 세수 확대로 이어지는 등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데 그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지역 간 재정 격차를 해소하고 농업과 농촌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이다.

우리보다 앞서 급속한 농촌의 고령화·저출산, 인구 도시집중 등으로 몸살을 앓았던 일본의 경우 2008년부터 고향세를 도입해 일부 시행착오를 겪었으나, 2014년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8년 1,788곳의 지자체가 거둬들인 고향세가 5,127억 엔(약 5조5,443억 원)에 달한다. 특히, 2016년 구마모토현에서 지진 발생 시 전년보다 8배가 증가한 80억 엔(한화 813억 원)의 고향세가 모금됐고,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을 돕고자 하는 도시민의 응원으로 기부금이 전년보다 늘어난 지자체가 74%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고향세는 재난 지역의 위기 극복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농촌 지자체에 반드시 필요한 고향세가 국회 문턱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고액 기부, 광역·기초 자치단체간 중복 모금, 지자체간 과열 경쟁 문제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과도한 우려와 쳇바퀴 논쟁이라는 지적이 많다. 100% 완벽한 법안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일단 제도를 시행해가면서 미비점은 하나씩 보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농촌 지역 등 인구감소가 발생하는 지역은 재정자립도가 대체로 낮고,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행과 인구 유출로 지방소멸 위기가 심각하다. 특히 지역 내 경제활동 인구감소로 농촌 지자체가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해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한 고향세 제도화는 절실하다. 고향세를 통한 재원 조달은 지역 인구감소에 대응하고 균형발전을 모색하기 위한 필연적 수단이다.

도농간 균형발전과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을 위해 고향세 제도에 대한 전북 도민의 사회적인 공감으로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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