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 붕괴를 넘어 소멸로 가는 시계 초침이 점차 빨라지고 있다. 지역을 떠받치고 있는 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신생아 수도 뚝 떨어지고 있어서다.
심리적 마지노선인 180만도 무너졌고, 출생아 수도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출생아 수의 척도가 될 수 있는 워킹맘의 생활도 여전히 고단한 상황이어서 ‘아이 낳기 좋은 도시 만들기’, ‘육아·일터 병행’ 등 각종 정책이 무색할 지경이다.

▲아이 울음소리 사라지는 전북… 미래가 ‘암울’
전북지역에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할 시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지난 2012년 1만 6238명이던 출생아 수는 해마다 줄면서 지난 2019년 1만 명대가 붕괴했다.
붕괴 속도는 더욱 가팔라져 지난해에 8318명으로 급전직하했다. 불과 10여년 만에 출생아 수가 절반가량이 줄어든 것이다.
청년층의 유출 현상도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지난 2008년 도내 전체인구 중 20%를 차지한 청년층 비중(15세~29세)은 올해 4월 16.6%까지 떨어지는 등 해마다 전북지역을 떠나는 청년이 늘고 실정이다.
전북지역의 출생아 수 감소와 청년 유출로 인해 이들에 대한 교육 및 생활환경, 양질의 일자리 등 인프라도 역시 같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상태다.
전주에 거주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B씨(34)는 “전북지역에서 몇몇 일자리를 제외하고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고 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산업구조의 열악성으로 취업하기도 어렵고, 막상 취업하더라도 더 좋은 곳을 향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여러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호남지방통계청 전주사무소가 조사한 지난 2019년 전북지역 1인당 개인소득은 1872만 5000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15번째로 최하위권에서 허덕이고 있다.
청년 유출의 심각과 출산율 감소가 함께 이뤄지면서 이제 전북지역은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가 없으면 지역경제가 멈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전북지역 다문화 가구원들은 지난 2019년 기준 4만 2377명으로 전체 도민들의 4%에 이른다.
또 지난 2019년 전북지역 다문화 출생 비율이 8.1%로 전국 지자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청년층의 고갈로 전북지역 일자리는 이미 외국인 근로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4월 기준 도내 신고된 외국인근로자들 수는 5726명으로 대부분 농·축산·어업·건설 등 기피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이는 신고된 외국인 근로자들 수로 유학비자 등으로 근로자로 활동하는 이들을 포함한다면 그 수가 배에 이를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육아·일, 전쟁같은 일상 ‘워킹맘은 괴로워’
회사원 박재영(33·여·가명)씨의 하루는 7시에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정신이 없다. 우선, 15~20분 이내에 화사 갈 준비를 마쳐야 한다.
한숨 돌릴 틈 없이 아이들을 챙겨줘야 하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TV만화채널을 켜면 다섯 살 막내딸이 먼저 일어나고, 곤히 잠들어 있는 일곱 살 첫째 아들을 깨워 어린이집 갈 준비시킨다. 그런데 두 아이의 옷은 어찌된 일인지 이미 외출복이다. 준비할 시간이 짧다보니 전날 옷을 미리 입혀둔 것으로, 아이들을 기르며 생긴 요령이다.
막 일어난 아이들에게 서둘러 간단한 아침을 먹이고 나면 오전 8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태워다 주고, 40분 거리의 사무실에까지 도착하면 오전 2시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다.
업무에 매진하고 있으면 시간은 금세 흐른다. 회사 출근시간 동안 어린이집을 나온 아이들은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아이들을 데리러 출발하는 시각은 대개 6시 30분. 비슷한 시간에 업무를 마치는 남편이 먼저 도착해 데려올 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그의 몫이다.
이렇게 시댁에 도착하면 시간은 오후 7시에서 7시 10분쯤이 된다. 다행히 아이들은 시어머니 댁에서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다보니 챙겨야 할 것은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엔 오후 8시 30분이 가까운 시간이 된다. 이후 잠시 동안 아이들과 놀아주고, 숙제를 봐주는 등 짧게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이들을 씻기고 머리까지 말리면 오후 9시 30분. 아직 완전히 불을 끄면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둘째를 위해 오후 10시까진 어둑한 전등불도 켜 둔다. 그리고 오후 11시에서 자정 사이 잠들고 나면 하루가 끝이 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대부분은 ‘쳇바퀴 돌 듯’한 재영씨의 일상이다.
그는 “물론 아이를 기르는 것은 돌발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에 이런 일상이 갑자기 흐트러지는 때도 발생한다”며 “회사 회식이 예고 된 날은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지만, 급작스런 회식이 잡히면 마치 ‘군사작전’을 펼쳐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재영씨는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가슴이 ‘덜컹’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어린이집에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오거나 아이들을 봐주는 시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올 때다. 양쪽 모두 좀처럼 업무시간에 연락이 오지 않는 편인데 연락이 왔다는 것은 ‘무슨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
어린이집의 경우 아이가 다치거나 아팠을 때, 시어머니로부터 연락이 오는 경우는 아이를 돌봐주지 못할 상황일 때다.
그는 “시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긴 경우에는 그나마 아이들을 좀 더 어린이집에 맡겨두는 등 행동을 취하고, 일상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아이들이 아프다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랄수록 아픈 빈도도 줄어가고 있지만, 막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는 자주 아파 속상한 일들도 있었다”며 “직장과 가정의 균형을 균등하게 맞추는 일이 가장 어렵고, 어떨 때는 ‘빵점 엄마’, ‘빵점 직장인’이 된 것 같아 힘들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우리 집의 경우 그나마 시어머니가 아이 돌보는 일을 도와주셔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편”이라며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이 없을 때에는 더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을 것 같다, 아이들이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맞벌이 가정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고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인구붕괴 심각… 도심 곳곳이 ‘불까진 창’
180만 인구가 무너진 전북지역 14개 시·군의 공동화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해마다 전북지역에 청년들 등이 떠나면서 도민 인식 속 최후의 마지노선인 ‘180만’이 지난 4월 처음으로 무너졌다.
더 큰 문제는 최근 효천지구 및 에코시티 등 신도시개발사업이 이뤄진 전주시에서도 인구감소 현상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18년 183만 6832명이던 전북도민은 2019년 181만 8917명, 지난해 180만 4104명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에는 전주를 제외한 13개 시·군은 적게는 0.7%에서 5.5% 가량의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했다.
최근 신도시 개발 등이 이뤄지고 있는 전주시마저도 지난 4월 309명의 시민들이 떠나면서 전북지역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 같은 공동화 현상이 이뤄지고 있는 전북도의 가장 큰 문제는 전북지역의 청년 유출과 고령화가 수년째 대두된 상황이다.
실제 지난 2008년 도내 인구 중 20%를 차지한 청년층 비중(15세~29세)이 지난 4월 16.6%까지 떨어지고, 지난 2000년 도내 인구 중 10.3%를 차지하고 있던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지난 4월 21.7%까지 늘어난 상태다.
또 전주와 군산, 익산 등 그나마 전북에서 선전하고 있던 도시들조차 공동화 현상이 이뤄지는 모습이 눈에 띄게 드러나고 있다.
특히, 최근 전주시는 신시가지와 에코시티, 만성지구, 효천지구 등 다양한 신도시 개발이 이뤄진 번화가 등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소위 구도심으로 불리는 중앙동, 다가동, 인후동, 금암동 등 지역은 사람을 찾아보기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줄었다.
이처럼 전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전주시에서도 공동화 현상이 벌이고 있는 상황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전북지역에서 타 시·도로 전출한 인구는 7만 1119명인 반면, 타 시·도에서 전북으로 전입한 수는 6만 2625명으로 한해에만 1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전북을 떠나고 있다.
이중 1인 가구의 이동이 71.8%에 달하는 것으로 대체로 일자리 등 먹고 살기 위한 청년층들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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