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접촉사고가 났다. 직진을 하는데 끼어던 차와 부딪혔다. 교통사고라고 하기에는 피해가 너무 경미했다. 범퍼 도색이 약간 벗겨졌을 뿐 상대 차는 피해도 없었다.

신호등으로 정지 대기 중인 내 차 앞으로 들어오기 위해 상대차는 왼쪽 방향지시등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쪽을 보고 누구와 손을 들어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일찍 출발한 탓에 다소 여유가 있었지만, 회의 준비 때문에 마음이 급했다. 신호등이 바뀌자마자 무의식적으로 가속페달에 발을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승용차가 머리를 내밀어 급제동했다.

나는 무작정 밀고 들어온 상대 운전자를 탓했다. 상대 운전자는 방향지시등을 넣고 양해 손짓까지 보냈는데 양보하지 않았다며 도리어 나에게 화를 냈다. 사실, 화가 났지만 피해가 경미해서 사과만 한다면 그냥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자꾸 나를 원망했다. 아침 출근길에 접촉사고로 서로 상대방 탓이라 다투는 동안 차량이 심하게 정체되었다. 해결 기미가 없자 정체된 차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사고 차량을 세워두고 말다툼을 하고 있는데 경찰관이 왔다.

경찰관은 경미한 사고이니 서로 좋게 화해하라는 권유를 했다. 그때에도 상대 운전자는 내 탓을 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그가 미워 출동한 경찰관에게 교통사고 접수를 해 달라고 요구를 했다. 우리는 경찰관을 따라 사고처리를 위해 경찰서로 갔다.

경찰서는 넓은 도로변에 있었다. 경찰서 주차장은 몇몇 군데 비어 있었고, 주차장에서 넓은 도로가 환히 보였다. 담당 경찰관은 우리보다 먼저 일어난 사고가 있다며 우리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다른 사고를 처리할 동안 우리에게 사고경위서를 작성하도록 했다. 나는 교통사고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어 끼어든 상대의 일방과실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사고경위서를 거의 다 적을 무렵 연락을 받은 보험회사 직원이 들어왔다. 그 역시 같았다. 사고경위서를 보더니, 상대 차량의 과실이 90% 이상이지만, 피해가 경미하니 합의하고 마무리를 지으라는 것이다. 사고를 내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상대에게 버릇을 고쳐 주고 싶었다.

담당 경찰관을 기다리는 동안 상대 운전자와 함께 대기석에 앉아 있으려니 가슴이 답답했다. 별것 아닌 것 가지고 바쁜 시간에 경찰서까지 왔으니 짜증도 났다. 담당 경찰관에게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하며 경찰서 마당에서 도로를 보았다.

도로는 긴 핏줄처럼 뻗어져 있었고, 그 핏줄 위에 많은 차가 피가 되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신호등이 직진 신호에서 정지신호로 바뀌고 있었다. 밀물처럼 밀려가는 차량이 브레이크등에 불빛을 뿜으며 일제히 멈추었다. 질주하다 차량이 멈춰진 도로는 오징어가 바닷가 건조대에서 건조되듯 딱딱하게 굳어져 갔다. 굳어져 버린 자동차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브레이크등이었다.
브레이크등은 속도를 조절하고 정지한다는 표시이다. 구조적으로 차량의 뒷부분에 불빛이 들어오도록 만들어져 있다. 브레이크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면, 브레이크등은 뒤 차량을 배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자동차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브레이크등이지만 자신이 아닌 다른 차량을 위해 불을 밝히는 배려등이다.

직진 신호를 받아 쏜살같이 밀려가는 차량 물결을 보며 잠시 내가 자동차가 되어 본다. 내게 속도를 조절해 주는 브레이크도, 남에게 배려해 주는 브레이크등도 없는 것 같다. 남들보다 빨리 달리기를 원했고, 항상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 노력한 것 같다. 나는 직진만 하는 가속페달만 가지고 운전을 했던 것 같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렸다. 언제 왔는지 상대 차량의 운전자가 반대편 주차장에 서 있다. 머뭇거리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서먹한 분위기가 잠시 흘렀다. 그리고 용기를 내 그에게 손을 내밀며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자 그도 나의 손을 잡았다. 오늘 사고는 없던 것으로 하자고 했다. 그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수리비를 주려 했지만 사양했다.

경찰서에서 나왔다. 이번에는 상대에게 먼저 출발을 하도록 양보를 하고 나도 출발을 했다. 한순간 양보 부족으로 상대방 운전자와 많은 차량의 통행을 방해했던 나의 행동. 유난히 후회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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