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힝근 교육자치연구소 상임대표

도쿄 올림픽이 끝났다. 코로나로 인한 연기, 대회 기간 중 코로나 감염자의 4배 가까운 확산, 무 관중 올림픽으로 인한 일본 정부의 엄청난 적자 등은 ‘세상에 없던 올림픽’이지 싶다. 순위는 개최국의 상승효과를 제외하면 국가의 경제력 순위로 드러났다.

우리는 경제력에 비해 낮은 결과를 보였으니 그 실망이 선수들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질까 걱정된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이다. 메달을 목표하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겠으며 피와 땀으로 범벅되지 않은 선수가 어디 있겠는가? 메달을 따지 못했어도 감동의 박수를 받은 배구팀처럼 모든 선수에게 큰 박수를 보내자.

필자는 올림픽을 보며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엘리트체육과 학교체육 그리고 생활체육과의 상관관계다. 상호부조 관계다. 올림픽 경기와 그 경기에서 선수들의 활약에 감동하고 고무된 종목에서 학생선수들의 집념과 각오가 더 커짐은 불문가지다. 더 큰 효과는 생활체육에서 일어난다. 청소년과 어른들의 취미 활동에 영향을 준다. 어린아이들도 체육관과 운동장에 나선다. 그런 경우가 어디 여홍철 선수의 딸 여서정 선수만 있겠는가?.

엘리트 선수의 활약이 청소년 체육활동의 확산에 미치는 효과. 청소년들의 체육활동이 선수층을 넓히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효과가 상호부조 효과이다.

그러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선수학생 육성과정에서 야기된 성적지상주의와 그로 인한 체벌과 인권 침해 문제, 선수학생들의 운동장과 체육관 독점으로 인한 일반학생들의 운동 기회 박탈 등으로 엘리트 체육이 비판 받아 왔고 학교 체육에서 설 자리를 잃어왔다. 당연히 선수층이 얇아지고 있다. 경기력과 경기결과에도 영향을 준다. 안타까운 일이다.

‘도 아니면 모’가 아니다. 걸도 있고 윷도 있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점만 핀셋으로 집어낼 일이다. 필자는 학교 교육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국영수사과 등의 과목을 ‘생활의 도구’라 여긴다. 아이들이 사회생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과목들이 ‘입시의 도구’로 변질된 우리 교육 제도와 풍토가 안타깝다. 한편으로 음,미,체 과목은 비록 입시도구로서의 중요성을 상실했지만 ‘생활의 목적’ 과목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심신은 삶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와 휴대폰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체육활동이 급격히 감소했고 여러 지표를 통해 건강손실과 정서손실에 대한 염려가 실재로 확인된다. 우리 아이들이 ‘하는 체육’의 유전자를 상실하고 ‘보는 경기’의 관중, 그러다가 끝내는 체육과 건강을 잃은 삶을 살게 될지 걱정한다.

그 탓에 두 번째 생각을 한다. 지자체의 경기장 확대 정책과 학교운동장의 분할 사용이다.

지자체의 경기장 확대는 도시 아파트 과밀지역에서의 작은 운동장 학교 탓에 반드시 필요하다. 여러 학교가 공동으로 사용 가능한 정규 구격의 대형 운동장, 복합 체육관, 수영장에 지자체의 투자가 절실하다. 학교 운동장은 소규모 경기와 체력 단련 시설, 음악당과 전시관 등으로 분할해야 한다. 농구, 배구, 풋살, 배드민턴... 코트 등으로 분할하고 코트 주변에 녹음이 우거진 환경을 조성해 준다. 적은 인원의 경기가 가능하게 하고 개인적 체력단련도 할 수 있게 한다. 땀과 휴식이 가능한 공간을 학교 안에 만들어 주는 일이다. 가깝게 접근하고 편안한 쉼이 가능해야 한다. 한 편에 아이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갤러리가 있고 음악과 공연활동이 자유로운 야외 공연장이 있는 학교를 상상한다. 현실적 어려움과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한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지금은 한계를 넘는 상상과 상상 이상의 상상까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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