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여름철새들이 월동지로 되돌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몇 가지 준비들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우선 몸집을 크게 불리기 시작합니다. 그 동안 동물성 먹이를 주로 먹으며 성장했던 새끼들이 이제는 식물성 먹이를 많이 먹습니다.

먹이활동 시간도 평소보다 2-3배 더 길어집니다. 식물성 먹이 포함된 탄수화물이 몸속에서 지방으로 저장되며 이 지방이 장거리 비행에 필요한 주된 에너지원입니다. 철새들이 비행에 필요한 에너지는 가만히 앉아 휴식할 때와 비교해 보면 8배 이상이 필요합니다. 불어난 체중 때문에 종종 날지 못해 다시 살을 빼야 하는 정도로 먹기까지 합니다. 지방은 주로 피부 아래쪽에 저장되지만 내부적으로 간과 위장을 비롯한 내부 장기도 커지거나 길어져서 비행에 대한 준비를 온몸으로 하는 셈입니다.

또한 먹성 변화를 통한 에너지 비축뿐만 아니라 장거리 비행에 걸맞게 깃털도 어른스럽게 바꿉니다. 첫 깃털갈이라 부릅니다. 머리, 등, 가슴깃 등 일부 깃털이 새로운 깃털로 변하는 데, 이런 과정을 겪고 있는 새를 낯선 새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과도기에 있는 새의 깃털은 우리가 흔히 도감에서 볼 수 있는 다 자란 성조의 깃털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올해 8월은 거의 한 달 내내 잔뜩 흐린 하늘과 천둥을 동반한 요란한 비가 자주 내려서 새의 이런 준비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을까 염려스럽기만 합니다. 준비과정을 마쳤다 하더라고 비바람 치고 습한 날씨 속에서는 월동지로 돌아가는 중에 길을 잃거나 예상보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여 낙오하거나 목숨을 잃기 쉽습니다.

고르지 못한 기후 속에서도 도심 공원이나 작은 숲에서 틈틈이 새를 찾아보면서 여름 탐조의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그러던 중에 반갑게도 월드컵 경기장 나무들 사이에는 예년에 본 적이 없는 후투티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후투티는 까치 정도 크기에 전체적으로 갈색 무늬를 띄고 있고, 날개에 검고 흰 무늬가 있으며 부리가 길고 가늘며 아래쪽으로 굽어져 있어 땅 속에 있는 지렁이와 땅강아지를 아주 잘 찾아내어 먹습니다. 가끔 긴 머리 깃털을 곧추 세우면 인디언 추장 모자를 닮은 듯 보여서 추장새라 부르기도 하며, 과거에는 뽕나무 아래서 자주 발견이 된다고 하여 오디새라 불렀습니다.

후투티라는 이름이 외국어 발음처럼 들리기는 하지만 실제는 우리말입니다. 울음소리가 훗훗 또는 훗훗후처럼 2음절 또는 3음절로 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을 보고, 남태경 교수가 1950년 ‘한국조류명휘’에 후투티라는 이름으로 등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면 영어권에서 부르는 이름도 hoopoe인데 우리가 부르는 이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새들의 이름을 지을 때 새들이 내는 울음소리를 본떠서 만든 이름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습니다.

뻐꾸기, 까치, 직박구리, 딱따구리가 내는 소리랑 이름을 연상해 보시면 어떤 의미인 지 이해하시지 싶습니다. 후투티는 사람이 사는 인가 근처 탁 트인 개방된 곳에서 주로 관찰이 되며, 둥지도 처마 아래나 공원 근처 나무구멍에 짓는 등 사람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이번 6월 하순 즈음에 아파트 벽면에 나있는 에어컨 배관구멍에 둥지를 지어 놓고 새끼를 위해 땅강아지를 부지런히 물고 나는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후투티는 ‘여름철새’이면서 텃새처럼 사시사철 곧잘 눈에 띕니다. 원래는 중국 동남부 지역과 우리나라를 왕복하지 않을까 하지만 곧잘 겨울철에도 만경강 춘포리 근처 새만금 들판에서도 관찰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철새이면서도 날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새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기지제, 오송제에는 몇 년째 그대로 살아가는 쇠물닭 가족이 있습니다. 물총새 역시 여름철새이지만 겨울에도 얼지 않는 냇가에서 사냥하는 모습이 전주 천변이나 만경강 하구에서 종종 관찰이 됩니다. 텃새화 되어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하기는 어렵지만, 대개는 지구 온난화와 관계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돌아가지 않는 새 뿐만 아니라 열대지방에서 관찰이 되는 곤충, 물고기 등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을 보면 온난화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철새들이 월동지와 번식지를 해마다 왕복하는 이유가 먹이 때문인데, 겨울철에도 번식지에서 먹잇감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월동지로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급속하게 진행 중인 지구온난화가 철새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중장기 적으로 미칠지 지금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마냥 좋은 일로 치부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지구 온난화가 아니더라도 새들 중에는 사람이 만든 환경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도시 농촌을 가릴 것 없이 집집마다 처마 밑에 둥지를 만들고 새끼를 키웠던 제비는 70년대 후반부터 농업에 사용된 농약으로 먹잇감이 없어져 버리고, 도시화에 따른 처마가 없는 주택개량과 환경호르몬 노출에 의해서 많은 개체수가 줄어들어 버렸습니다. 충북산림환경연구소와  남강유역환경청에서  1980년대부터  실시하고  있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충청도  지역의 10㏊ 면적에서 1987년 2,282마리가 넘던 개체수가 2005년 5월엔 13마리로 관측되어 최근 20년 사이 개체 수는 1/100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충청도 뿐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입니다.

황새나 따오기 역시 밀렵 혹은 농약에 의해 자취를 감추었다가 러시아와 중국에서 들여온 개체들을 복원하여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형편입니다. 이렇게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새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새도 있습니다. 만경강 동진강 하구 갯벌을 중간 기착지로 삼아 말레이반도에서 캄차카반도까지 날아가던 넓적부리도요는 70년데 3000여 쌍에서 최근 전 지구상에 300 여쌍만이 정도가 남아 있다는 보고가 있고 지속적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실정입니다.

새만금 개발이 치명타를 입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그 후로도 번식지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개발과 겨울을 나는 동남아시에서 먹잇감으로 여겨져 밀렵이 성행하는 등 복합적인 이유로 조만간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최근 서해안 갯벌이 세계 자연환경 유산으로 지정이 되어 무분별한 개발에서 벗어나 이들이 보호받을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이미 훼손된 것을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아 절망적입니다.

여름의 막바지입니다. 부디 험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름철새들이 장거리 비행을 위한 준비를 잘 끝내고 무사히 월동지로 날아가고 매화 봉오리가 피어날 즈음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오길 바라며 이런 사계절 순환처럼 당연하다고 믿었던 철새들의 오고 감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기원합니다./김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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