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은 철새들이 다시 이동(異動)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한반도에 번식지를 두고 여름 내내 새끼를 키운 철새들이 다시 남쪽을 향해 떠나갑니다. 여름철 번잡하기만 했던 서식지는 이제 조용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새를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짧은 방학시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짧다고 이야기 한 이유는 한반도 북쪽, 중국 동북부나 사할린, 멀리는 알래스카에서 새끼를 키웠던 철새들이 우리나라를 거쳐 가면서 관찰되는 시기가 곧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새라고 불리는 이들입니다. 이미 경기도에는 겨울 철새인 기러기 무리가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이들을 따라 겨울철 맹금류도 조금씩 관찰되고 있다고 합니다. 

더위가 주춤하고 가을에 접어들면서 종종 만경강 하구 새만금을 따라 가면서 갯벌이나 들판의 생명체들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곤 합니다. 행여나 성질 급한 겨울철새 무리가 벌써 와서 진을 치고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감으로 갯벌이나 강가를 찾습니다. 그런 와중에 뜨거운 햇살이 가득한 9월에 백로와 가마우지 사이에 한쪽 다리를 들고 조는 듯한 자세로 서 있는 황새 한 마리를 보고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겨울에 보이는 새가 왜 이 가을에 여길 왔지?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보니 다리에 가락지가 있습니다. 가락지는 처음봅니다. 그 가락지에는 알파벳과 숫자가 있었지만 어렵게 찍은 첫 사진에서는 아쉽게도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여러 날 지난 후 안정적으로 카메라에 담아보니 드디어 인식표를 명확하게 읽을 수 있었고, ‘황새모니터링DB’에 접속해서 그 황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황새는 1971년 야생에서 마지막으로 관찰된 이래 우리나라에서는 멸절되었다고 알려졌고 1996년부터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이 복원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독일, 러시아, 일본 등지에서 황새와 알을 들여와 지난한 노력 끝에 2002년 첫 부화에 성공을 했고 방사 후 자연번식이 성공한 이래 점차 그 개체수가 늘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멸종위기 1급 상태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현재 국제적으로도 1,000-2,499마리 정도만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경강 하구 새만금에서 만난 황새는 ‘A93’이라는 인식표를 다리에 부착하고 있었습니다. 이 인식표 때문에 겨울을 나기 위해 우리나라로 온 것이 아니라 예산군 황새공원에서 야생으로 방사된 개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A93’은 2017년에 태어난 수컷으로 이름은 ‘종황’이라고 합니다. 2019년에 자연으로 방사하였으며 이듬해에 암컷인 ‘목황’, ‘A95’와 부부의 연을 만들어 번식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다가 올해는 충남 덕산면 외라리에서 번식에 성공하였습니다. 8월까지 부부가 함께 지내다가 어쩐 일인지 혼자 새만금 지역으로 내려왔으며 현재는 다른 황새 무리들과 동진강 유역에서 어울리기도 하다가 만경강 지역으로 날아오기도 합니다. 현재까지 새만금 지역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새들의 모습이 모두 비슷하여 개별적인 확인이 어렵지만 이렇게 인식표를 가지고 있는 새들을 만나면 태어나고 성장하고 번식하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어 더욱 정이 가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이름까지 있다는 사실은 훨씬 더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황새에 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이름에 관한 것으로, 황새는 몸길이 112cm 되고 몸 전체가 하얀색이며 날개깃만 검은색이어서 황색, 즉 노란색이 없습니다.  우리말에 ‘한’은 ‘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데 ‘한새-환새-황새’라는 소리 변천을 거쳐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또 하나는 1822년 독일 한 지역에서 목에 긴 창이 찔린 채 날아온 황새 한 마리가 발견이 되었는데, 그 창을 조사한 결과 중앙아프리카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황새를 Arrow Stork라고 불렀으며 독일에서만 25 마리 이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전에는 철새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이유를 몰라서 다른 새나 동물로 변한다거나 깊은 잠을 잔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이 발견들을 통해 철새 이동경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일 황새를 찾아다니다가 저어새 20여 마리가 무리지어 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는 50여 마리까지 숫자가 늘어났는데 저어새는 다른 새와 구별되는 독특한 부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넓적하고 긴 숟가락 모양의 부리가 그것인데 그 긴 부리를 물속에 넣은 채 머리를 좌우로 움직여 휘젓는 모양을 보고 ‘저어새’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저어새 역시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며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 일부에서 전 세계 무리의 80%가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천 강화군, 옹진군, 전남 영광군 일부 무인도에서 번식을 하다 월동지인 대만 홍콩 등으로 이동하기 전 가을에 서해안 갯벌에서 잠시 시간을 보냅니다. 현재 전체 개체 수는 약 5.220여 마리인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다행스럽게 점차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저어새는 다른 불명예를 안고 있었습니다. 저어새가 물을 휘저으며 먹는 특이한 먹이 활동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저런 운에 의존하는 비효율적인 먹이 활동이 멸종을 앞당기는 것이라 말합니다. 왜가리나 백로처럼 먹이를 추적하고 날카로운 부리를 이용해서 순식간에 잡아내지 못하니 겉으로 보기엔 답답해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이 아닙니다. 저어새 부리에는 무수히 많은 신경 다발이 존재하고 있어서 물 속에서 움직이는 먹이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어새가 부리를 물 속에 넣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저어새가 멸종위기에 빠진 이유는 저어새의 생태적 특징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파괴한 생태 환경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전북녹색연합은 새만금 근처 무인도에 저어새가 100여 마리 집단 번식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곳 주변에 태양광 개발이나 새만금 공항이 예정되어 있어 이 번식지 운명은 풍전등화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번식지를 찾아 옮겨주면서 개발을 하면 된다고 하는 다소 허황된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번식지 이동이 성공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강과 산 그리고 갯벌이 건강하게 살아있어야 다양한 생명체들이 큰 어려움 없이 그들의 생애를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명체를 가까이에서 때론 멀찍이 바라보며 그들과 함께 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서로 상생하며 오래도록 지속 가능한 관계를 유지했으면 합니다.
/김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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