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수 시집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애지시선)'에서는 평범한 단어도 비범하게 만드는 특별함이 숨어있다. 

이를테면 '이석증'이라는 질환을 '블랙홀'로 빗대는 시인의 능력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블랙홀이 사라지지 않는다//새벽 화장실 앞에서 핑 돌아 현기증을 느꼈을 뿐인데/뒤꼍에서 안달하는 침묵이 달아나듯 팽창한다/치우지 못한 설거지 같은 생각은/모로 누워 허공에 닿지 못해/종일 돌배나무 곁에 바큇살을 굴리며 간다//('이석증' 중에서)"

"대파와 콩나물 북어 대가리를 쑤셔 넣고 묵직하게 들려지는 가난한 무게 한번 쓰고 다시 또 돌려쓰는 이 무게('에코백' 전문)"

시인은 시 '에코백'을 통해 삶의 단면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화려한 단어나 문장이 아닌, 담백하게 스며든 일상의 찰나를 포착해 꾸밈없이 시로 펼쳐낸다. 

그가 구현한 시 세계에 대해 복효근 시인은 "문학을 현실과는 절연된 불연속적 완결체로만 보는 견해가 아니고 문학은 글을 쓰는 자의 절박한 내적 동기에서 비롯된 자기 삶의 표현"이라고 정의한다.

뿐 만 아니라, 복 시인은 "오직 씀으로 하여 질곡의 현실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고 얽힌 실타래 같은 현실에서 한 발짝 내디딜 길을 닦아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지막하게 소리 내어 읽어보기 좋은 김 시인의 시편들은 깊은 서정성이 내포되어 있다. 

또 시인 내면의 올곧은 힘들을 느껴볼 수 있으며, 삶에 대한 아름다운 여정이 찬란하게 기록돼 읽는 독자에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1967년 전주에서 태어나 우석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김헌수 시인은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삼례터미널’로 당선됐다. 시집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시화집 ‘오래 만난 사람처럼’을 펴냈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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