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직장에서 연금인을 선발한다는 공람 문서를 보았다. 업무 공적이나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을 한 직원을 찾아 포상하겠다는 문서였다. 지사에서 추천자를 찾았으나 마땅한 직원이 없었다. 퇴근 무렵에 다른 지사 직원이 우리 지사 직원을 우수직원으로 추천하겠다는 전화였다. 추천한 직원과 함께 근무하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추천받은 직원과 차를 한잔 나누었다. 연금인 추천을 얘기하였는데 거절했다.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나는 몇 차례 설득 끝에 자료를 받아 추천서를 작성했다. 추천한다고 모두 선발되는 것이 아니다. 두 차례 엄격한 심사와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검증 절차가 남아 있다. 나는 추천서를 쓰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테레사 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테레사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봉사활동을 하게 되면 면역기능이 높아지는 효과를 의미한다.미국 하버드대 의대에서 학생들에게 봉사활동을 시킨 후 체내 면역기능을 측정했더니, 봉사활동 후 면역기능이 많이 높아졌다고 한다. 연구 결과, 봉사활동을 하거나 봉사활동 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면역기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었는데 이를 평생 가난한 사람을 위해 헌신한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따서 테레사 효과라고 했다고 한다.

국민연금공단 직원 대부분 봉사활동을 한다. 봉사 장소는 공단이 제공하고 비용은 직원들이 봉급에서 기부한 돈으로 사용한다. 직원들은 매월 5만 원까지 기부할 수 있다. 원하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지난달 직장에서 주관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기초수급자에게 도배 봉사였는데 보람이 있었다.

추천서 초안을 적고 내용을 훑어보았다. 눈에 띈 내용이 두 가지였다. 불우한 이웃에게 10년 동안 국민연금 보험료를 지원하여 연금을 받게 했다는 내용과 기초생활수급자가 보증금이 없어 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정을 듣고 보증을 지원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지방 도시에 자기 집이 있기는 하지만 그리 부유하지는 않다. 그런 형편임에도 전혀 모르는 불우이웃에게 10년 동안 보험료를 내 주고,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도록 수백만 원의 지원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더구나 본인이 받은 봉급이 부족해서 대출까지 해서 지원했다니, 그의 따뜻한 심성이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이런 민원이 있었다. 80세를 훌쩍 넘긴 민원이었다. 잘 걷지도 못하고 옷도 남루하게 입은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지자체 생계비 지원 관련 민원이었는데 병원을 가던 중에 우리 사무실을 들렀다고 한다. 민원인의 상담내용이 우리 업무와 관련이 없어 면사무소에 담당자와 통화한 뒤 조치를 해 드렸다. 문제는 민원인의 목적지인 병원까지 가는 것이었다. 민원인의 집에서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민원인의 집은 사무실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져 있었고, 민원인이 찾아가는 병원까지는 더 멀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갈 수는 있겠지만, 30킬로 이상 떨어진 종합병원에 가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병원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 물어보니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다. 민원인을 상담한 그 직원이 나를 찾아와서 딱한 사정을 얘기했다. 나는 얘기를 듣고 사무실 차량으로 병원까지 모셔다드리도록 했다. 버스정류장까지만 안내를 해도 고마워할 텐데 멀리 떨어진 병원까지 모셔다드렸으니 할머니는 많이 고마워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추운 겨울의 길목이다. 누군가에는 겨울은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날씨만큼 마음이 시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올해가 가기 전에 작은 여유가 있다면 기부나 봉사로 받는 이에게도 지켜보는 이에게도 주는 이에게도 따뜻함을 느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 테레사 효과를 누렸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