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평소 속만 비면 쓰린 증상이 있었다. 큰 병일 것 같아 걱정이 되어 병원가기를 꺼렸다. 별 것이 아닐 거라는 자가 진단을 하고 속이 쓰릴 때마다 찬물을 마시거나 약국에서 위산제를 사 먹으며 통증을 조절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증상이 심해졌다. 위산제를 먹어도 물을 마셔도 속쓰림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아내의 손에 이끌려 위내시경을 받게 되었다.  

의사를 혀를 찼다. 이렇게 되도록 뭐했냐고 따졌다. 내가 아픈데 의사가 웬 잔소리를 하냐고 나도 따지고 싶었지만, 아내가 옆에 있어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의사는 통증이 심했을 텐데 어떻게 참았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규칙적인 식사와 담배와 커피를 끊고 맵고 짠 음식을 피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다. 

의사는 내 병명은 ‘위미란’이라고 했다. 위염이 아주 심한 상태라는 것이다. 암으로 진행될 수 있다며 겁을 주면서 치료를 해 보자고 했다. 평소 나는 흡연과 하루에 서너 잔의 믹스커피를 습관적으로 가까이 했다. 또한 맵고 얼큰한 음식을 좋아했고 늦잠을 자는 날이 많아 아침 식사가 불규칙했다. 이름 없는 잡초조차도 적당한 대지와 온도와 햇볕을 받아야만 잎의 싱싱함을 유지할 수 있는데, 수십 년 동안 몸에 좋지 않는 나쁜 습관을 가졌으니 내 위장은 견디기가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들어오는 니코틴과 카페인을 소화하려고 상처가 나면서도 무단히 애를 썼을 것이다. 심하게 충혈된 위내시경 사진을 보니 내 몸의 일부이기는 하지만 위장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국에서 처방전을 주고 대기실 자리에 앉았다. 약국 벽에는 인체내부의 장기 사진들이 걸려 있다. 정상적인 사진도 있고 질병에 걸린 사진도 있다. 사진들 중에서 위장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적인 위장사진 아래에 있는 위암사진이 보여 흠칫 놀랐다. 두 사진을 보면서 내 손에 쥐고 있던 나의 위내시경 사진을 비교해 보았다. 위암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상적인 위장 사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붉은 빛으로 충혈되어 있다. 충혈된 핏줄이 곧 터질 것만 같다. 나는 손에 쥐고 있는 나의 내시경사진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눈길을 창밖으로 돌렸다.

직장생활한지 33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니 직장생활도 내 위장처럼 거칠었던 것 같다. 상처도 입고 상처도 입혔다. 직장생활은 좁은 트랙 위에 많은 사람들이 빼곡히 걸어가는 운동장 같았다. 어떤 사람은 달리고, 어떤 사람은 걷고, 또 어떤 사람은 포기하기도 했다. 나보다 앞서는 직장동료가 있고 뒤처지는 동료도 있었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이 직장생활을 단거리 달리기라는 최면에 빠져 있었던 같다. 내면을 가꾸기보다 겉으로 들어난 목표만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좋은 습관이 위장을 보호하듯 내면을 가꾸어 동료직원과 함께 가는 것이 성공하는 직장생활임을 퇴직 할 무렵에 알게 되었다. 

약국을 나섰다. 두툼한 약봉지를 받고 병원 건물을 나섰다. 그래도 속이 쓰리는 증세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큰 병이 아니었다. 치료를 하면 회복이 된다고 하니 마음이 놓이지만 한편으로는 습관을 바꾸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내시경을 마치고 나의 삶을 내시경으로 투영해 본다. 붉게 충혈된 내 삶이다. 분명 내가 꿈꾸었던 모습은 아니다. 젊은 시절, 이웃집 아이들을 무릎에 앉혀 밥을 먹여주던 다정한 뒷집 총각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욕심으로 충혈된 동물 한 마리가 거울 속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담배와 커피를 줄이고 식습관을 바꾸어 ‘위미란’을 치료해야 하듯 과욕으로 생긴 상처와 나로 인해 상처 입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내면을 다듬는 작업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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