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은 나무를 씹지 않고, 벌레나 물고기를 먹지 않으며,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좋지 못한 짓을 즐기지 않고, 젖이나 알 같은 자질구레한 것도 차마 먹지 못하는 거야. 그리고는 산에 들면 노루나 사슴을 사냥하고, 들에 나면 말이나 소를 사냥하되 아직 먹을 것으로 누를 입거나, 음식의 송사를 일으키는 일이 없으니 범의 도야말로 어찌 공명정대하지 않으냐.”

조선 후기 문장가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나오는 호랑이에 관한 언급이다. 호질은 인간 문명의 야만성과 약탈적 생활태도, 파렴치 등을 호랑이 입을 빌려 꾸짖는 내용이다. 상대적으로 호랑이는 도를 가진 동물로 묘사된다. 호랑이에 대해 “착하고도 성스럽고, 문채롭고도 싸움 잘하고, 인자롭고도 효성스럽고, 슬기롭고도 어질고, 엉큼스럽고도 날래고, 세차고도 사납기가 그야말로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다”고 칭찬했다. 연암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사회의 주류세력이자 온갖 위선적 태도를 보이는 유학자들을 마음껏 비웃었다.

호랑이는 이처럼 우리 민족과는 아주 가까이에 있고 친숙한 동물이었다.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상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았다. 그래서 중국 문헌은 우리나라를 ‘호랑이의 나라’라고 일컫기도 했다. 호랑이 이름도 많아서 ‘산군자’, ‘산령’, ‘산신령’, ‘산중영웅’ 등으로 불리었다. 물론 무서운 맹수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신령스럽고 인정이 많은 영물이라는 정서도 그에 못지않았다.

단군신화를 비롯해 여러 옛날이야기에 호랑이가 단골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그림이나 공예품, 조각 등에서도 호랑이는 그 늠름한 위용을 드러냈다.

2022년 호랑이해를 맞아 목포에서 눈길을 끄는 뉴스가 전해졌다. 목포 유달초등학교에 있는 국내 유일 한국 호랑이 박제표본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붙잡힌 한국 호랑이의 박제가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채 탈색 등 손상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 관리하자는 목소리가 높지만 학교 측이 동의하지 않아 방치되는 형편이다. 학교 동문들이 학교 자산이라며 내놓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다.

주지하다시피 남한 한국 호랑이는 1921년 경주에서 마지막 한 마리가 사살되면서 멸종했다. 요즘 활발한 복원사업으로 번식한 호랑이들은 사실상 한국 호랑이 순수혈통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만큼 목포의 호랑이 박제 가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학교와 원만한 타협을 통해 진짜 한국 호랑이 표본이 잘 보존되고 일반에게도 널리 공개되도록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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