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미술관

오피니언l승인2022.01.18l15면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나는 그에게 오랫동안 많은 한국 미술품을 수집해준 것을 치사하고 ”나도 귀하의 애써 모은 수집품을 인수하여 귀하에게 지지 않도록 정성껏 보존하겠다“고 말한 후 그의 수집품을 즉석에서 인수하였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의 글 ‘고미술품 수집 비화’의 한 대목이다. 간송이 ‘그’라고 호칭한 사람은 일제강점기 도쿄에서 활동한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다. 그는 한국과 일본에서 귀중한 도자기들을 많이 수집해 ‘꿈의 컬렉션’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 가운데 고려청자 22점이 있었다. 간송은 이를 사기 위해 일본으로 직접 건너갔으나 협상에 실패했다. 그런데 그가 영국으로 귀국 직전 한국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간송이 설립한 사립미술관인 보화각을 보고 또 문화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확인한 뒤 20점을 팔았다. 당시 물가로 기와집 400채를 살 수 있는 가격이었다.

거기서 획득한 고려청자 중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국보 제270호)과 ‘청자오리형연적’(국보 제74호)은 값을 따질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다.

이처럼 간송이 사재를 털어 지켜낸 우리 문화재는 5천여 점에 달한다. 도자기를 비롯해 회화, 금속 공예, 불교 조각, 전적 등 종류도 다양하다. ‘훈민정음 해례본’ 등 국보만 12점이고 보물도 12점이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문화재도 다수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이 수장품들은 보화각의 후신인 간송 미술관에 보관돼 있다.

간송의 스승이던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 오세창은 보화각 지석에 ‘서화는 심히 아름답고 옛 골동품은 자랑할만 하다. 이곳에 모인 것들은 천추의 정화로다, 근역에 남은 주교로 고구 검토할 수 있네.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라는 글을 남겼다.

그런데 간송 미술관이 보유한 국보 2점이 최근 경매시장에 나왔다. 우리 국보가 경매에 나온 것은 국내 최초이자 사상 처음 일이다. 국보 제72호인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과 국보 제73호인 ‘금동삼존불감’이 그것이다. 현재 추정가는 28억 원에서 45억 원 사이라고 한다. 간송 미술관은 지난 2020년 보물 2점에 이어 이번에 국보 2점을 내놓은 것이다.

물론 이유는 재정난이다. 간송부터 3대에 걸쳐 문화재를 지켜왔지만 최근에는 거액 상속세 등 지출이 늘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전한다. 백만장자로서 거의 모든 재산을 문화재에 쏟아부은 간송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간송은 한국 문화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다. 문화보국 정신이 오늘에 이르러 행여 돈 때문에 빛바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국가가 나서는 게 도리인 듯싶다.


오피니언  opinion@
<저작권자 © 전라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의 다른기사 보기

인기기사

기사 댓글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최대 400byte

숫자를 입력해주세요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합니다.
여백
여백
전라일보소개기사제보광고안내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5038]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로 75  |  대표전화 : 063)232-3132  |  팩스 : 063)284-070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 동 성
법인명 : (주)전라일보  |  제호 : 전라일보  |  등록번호 : 전북 가 00003  |  등록일 : 1994-05-23  |  발행일 : 1994-06-08  |  발행인 : 유현식
편집인 : 유현식
전라일보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2 전라일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