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택복권을 / 오늘 또 한 장 / 슬그머니 사 보는 것은 //내게 행운을 준다는 / 언젠가 한 번은 / 줄 수도 있다는  / 누군가가 있다기 때문 // 그 어디보다 / 여기에는 / 그런 분이 꼭 계신다기 때문”

박의상 시인의 ‘주택 복권’이라는 시의 일부다.

복권을 사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일확천금의 꿈은 특히 살기 힘든 이들일수록 간절하다. 기댈 곳 하나도 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곤궁한 삶을 여유로운 삶으로 바꾸는 복권에 끌릴 수밖에 없다. 언젠가 한 번은 행운이 자신에게도 올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이 그나마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복권은 대표적 불황형 상품이다. 경기가 좋지 않을수록 판매량이 늘어난다. 

우리나라 복권의 역사는 1947년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 대한민국 정부도 수립되지 못한 상황서 1948년 런던 올림픽을 출전하게 됐다. 출전경비를 마련하지 못한 체육계는 궁여지책으로 ‘올림픽 후원권’이라는 이름으로 복권을 발행했다. 꽤 호응이 좋아서 모두 8만 달러를 모을 수 있었고 이 돈으로 모두 67명의 임원 선수가 런던으로 갈 수 있었다.

이후에도 복권은 어려울 때 재정 조달역할을 맡았다. 1949년에는 이재민 구호를 위한 ‘후생복표’가 그리고 1956년부터는 전후 산업부흥과 사회복지 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애국복권’이 발행됐다. 또 현대적 의미의 첫 번째 복권인 ‘주택복권’은 1969년부터 선을 보였고 이후 ‘올림픽 복권’, ‘체육복권’, ‘엑스포 복권’ 등이 봇물 터지듯 판매됐다.

이처럼 우리나라 복권은 애초부터 공익사업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취지가 강했다. 정부재정이 충분치 않은 상황서 공익사업에 쓸 돈을 모으는 역할이다. 거기에 불법 도박으로 인한 사회문제를 완화하는 의미도 더해졌다. 물론 사행심 조장이나 노동 의욕 저하, 중독 등 부정적인 측면도 늘 부각 되고는 했다.

지난해 복권 판매액이 5조9천755억 원으로 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또 국민 10명 중 6명은 1년 동안 한 번 이상 복권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재부 복권위원회의 집계결과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 19로 시중 경기가 침체 된 데다 경마 등 다른 사행산업이 주춤한 때문으로 풀이 된다.

복권 열풍을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사실 좋은 측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서민들의 삶이 팍팍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유쾌한 놀이이고 건전한 욕구 해소 수단이라는 정도의 인식이라면 굳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기필코 일확천금으로 팔자를 고치자는 자세로 덤비면 안 된다. 정부도 손쉬운 재원 확보수단으로 즐겨 쓸 일은 더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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