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줌 어르신도 잘 잤고/똥 어르신도 잘 잤는데요/배회 그 어르신은/밤새 오락가락하셨어요//노인 요양 시설 야간 근무자와 주간 근무자의/인수인계 대화를 귀담아들은/어르신, 병상에 누워/눈을 똥그랗게 뜨고 바라보신다/아흔여섯 살인 당신이/마흔한 살이라고 우기는/어르신, 굳어가는 혀로/떠듬떠듬 말씀하신다//소,속삭,거,려,도,다,알아!(‘속삭거려도 다 알아’ 전문)”

유순예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속삭거려도 다 알아(푸른사상)’가 4년 만에 출간됐다.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시를 써온 유 시인은 기교 부린 시와 의도적으로 낯설게 직조한 작품을 부정한다. 여기서 의도는 운율도 포함한다.

시인의 이러한 태도와 취향은 진정성 있는 그대로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가령, 시인의 시 ‘늙은호박’을 보면 “늙은 어머니/혼자 호미질하신다//어려서부터/체험 시를 써서 흙에 새기는/육필 시인이다(‘늙은 호박’중에서)”라는 구절이 나온다. 시인에게 농사하는 엄마의 뒷모습은 “어려서부터 체험 시를 써서 흙에 새기는 육필시인”과 다름없다.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체험 시’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시인의 시론은 흙에 삶을 새기는 호미질의 철학이라 부를 수 있다.

문종필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을 통해 유 시인의 시를 이렇게 표현한다. “어쩌면 작품의 질이나 평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방식으로 ‘나’를 갱신하는 것일 테다.

시집은 거울처럼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는 행위이니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고 말이다.

문 평론가는 “이러한 경험은 특별한 것이 되면 안된다”라며 “깨닫고 성장하는 삶 자체는 보통 인간의 삶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러한 진폭은 더이상 특별한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을 ‘때’까지 끊임없이 가슴속에서 반복되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전라북도 진안고원에서 태어난 유순예 시인은 아버지의 지게와 쟁기, 어머니의 호미에서 시론을 배웠다.

2007년 ‘시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나비, 다녀가시다’, ‘호박꽃 엄마’ 등의 시집을 펴냈다.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등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시를 공부하다가 귀향했다.

현재 고향에서 ‘속삭거려도 다 알아’ 듣는 치매 어르신들의 입말을 받아쓰며 살고 있다./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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