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 조민철’ 

그의 명함은 단출하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글씨로 다섯 글자를 새겨 넣었다. 2019년부터 한국연극협회 전북지회(이하 전북연극협회)장을 맡고 있어, 이름 앞에 붙어 있는 ‘회장’이라는 수식어가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체성을 찾기까지 그는 수없이 많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골목과 터널을 넘고 돌았다.

남들은 40년 가까이 지역에서 연극배우로 관객과 호흡하고, 한번 하기도 힘들다는 회장직을 세 번이나 맡게 됐으니 꽃길 끝에 얻은 열매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두, 스스로 노력해서 빚어낸 성과다. 

지난 18일 전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민철(60) 회장은 앞으로 4년간 전북연극협회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온 듯 보였다. 단순히 직함에 머무르는 회장이 아닌, 협회원과 지역 연극 발전을 최우선에 두겠다는 발언은 왠지 믿음이 갔다. 

“사실은 회장에 출마할 생각이 없었어요. 저도 젊었을 때는 지금 제 나이 또래의 사람이 지회장에 출마한다고 하면 ‘노욕’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회장 선거가 다가올 무렵부터 서서히 마음 정리를 했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다시 도전하게 됐어요. 실제 결심까지는 고민이 많았죠. ‘협회원들에게 무엇을 얼마큼 해줄 수 있을까?’ 이걸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고민하고 있어요. 이를 위해 과연 내가 실천적으로 혹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회장이 될 수 있을까? 자문했고, 숙고해서 회장에 다시 나서게 됐어요.”

2018년 전북연극은 ‘미투’ 사건을 겪으면서 블랙아웃(Blackout) 됐다. 곯은 대로 곯았던 이들이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왔고, 쉬쉬하며 지나쳤던 부조리에 맞서 싸우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물론, 그 사건 이후 전북 연극계는 갑자기 먹통이 돼버렸다. 막과 막 사이, 혹은 장과 장 사이에 있는 암전처럼 이 시기 전북 연극계는 거대한 암전 상태를 겪었다. 2019년 멈춰버린 연극계를 다시 되살릴 구원투수로 등판한 게 조민철 회장이다. 미투 사건이 터졌을 당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 사건으로 1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상황을 정리하고, 조례와 규칙을 다시 만들어서 발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죠. 그런데 현재까지도 그 사건에 대해 완전히 해결된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한 기준을 마련했고,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하면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을 내놨지만 미봉책이죠. 그래도 이전같이 은폐하는 일은 없어요. 피해자들이 혼자 속앓이하게 두지 않을 거예요.”

연극계 미투 사건이 수습될 무렵, 전 세계가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뒤덮이며 모든 분야가 초토화됐다. 3년째, 이 질기고도 강력한 질병은 현장예술의 최고 장르이자 관객을 대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연극판을 완전히 산산조각냈다. 

이러한 상황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쉰 조민철 회장은 “코로나라는 질병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피해를 입었지만, 연극은 그야말로 절망의 연속”이라며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공연을 올리는 그 순간까지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애초에 연극 티켓 수입으로 흑자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무관중 관객으로 공연을 올리면 실제 수익 자체가 없다. 게다가 무대에서 배우와 호흡하고 관객과 소통하면서 진행되는 게 연극의 방식이자 본질인데, 코로나로 인해 관련 절차들이 축소되고 사라지면서 연극 본질이 훼손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부딪치고 싸우고, 안고, 침 튀기면서 만들어지는데 배우들은 연습과정부터 불안함에 시달려요. 마스크를 쓰고 연습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발성을 하기 위해선 평소보다 2~3배 힘을 들여 대사를 전달해야 하죠. 수입에 대한 불안함 뿐 아니라, 연극 제작 전반이 조심스러워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는 앞으로 ‘세대 간의 소통’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했다. 전북연극판 현실이 녹록치 않은 만큼, 서로가 똘똘 뭉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최선책을 찾기 위해 젊은 연극인들과 중견 연극인들이 소통하고 협업한다면 지금의 막연함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젊은 연극인들은 중견 연극인들을 보면서 ‘나의 미래가 저렇게 펼쳐지겠구나, 롤모델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연극을 해나갔으면 좋겠어요. 중견 연극인들은 ‘후배 연극인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고 공연을 준비할 수 있어 뿌듯하다’는 마음으로 힘을 낸다면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이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현재 고창군과 김제시에 신규지부 개설에 힘쓰고 있다. 지부가 개설된다면, 협회 도움을 받거나 다른 연극인들과 협업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생겨 보다 안정적으로 연극 무대를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상처럼 숨 쉬듯 연극과 호흡하며 살고 있다는 ‘회장 조민철’. 그는 전북연극협회장이기 전에 단단한 내공을 가진 연극배우로서 4년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예술경영 혹은 예술정치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통해 더 나은 상태의 전북연극을 만들고 싶어요. 임기가 마무리되면 남은 생은 모두 연극 무대에 바치고 싶어요.”/박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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