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국민연금공단

 사람의 인식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얼굴이다. 누군가를 만나면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을 인식한다. 그런데 요즘 얼굴을 가리고 사는 세상이다. 코로나 감염이 걱정되어 모든 사람이 ‘니카’라는 옷을 입은 이슬람 여성처럼 눈만 보인다. 눈을 보고서 누군지 알기가 쉽지 않다.

 일상이 바뀌었다. 코로나로 기본적인 생활마저 변화시켰다.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간단한 물건도 택배로 받고, 각종 모임이나 행사에는 아주 제한적으로 참석한다. 조상 제사조차도 남자들 몇 명만 참석하기도 한다. 바뀐 일상으로 지역경제도 많이 어려워졌다. 아내가 하는 가게에 한 명의 손님이 오지 않는 날이 있을 정도로 중소 상인들은 힘들다. 하루에 수십만 명이나 확진자가 나와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상대와 대화조차 부담스러워지는 삭막한 일상이 씁쓸하다.

 며칠 전, 서울에 있는 지사로 발령을 받았다. 사무실을 다니면서 직원들에게 부임 인사를 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어 직원의 얼굴을 알 길이 없었다. 오똑한 코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마스크에 가려지지 않은 눈이 전부였다. 쌍꺼풀 여부와 눈동자의 크기, 눈가에 주름 정도만 보였다. 인사를 나누긴 하였지만, 마스크로 가려진 직원들의 얼굴을 솔직히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어느 직원이 나를 불렀다. 자신을 몰라본다며 섭섭해했다. 고개를 갸웃했다. 누굴까? 이름과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양해를 구하고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했다. 아는 얼굴이었다. 20여 년 전, 일 년 동안이나 같은 근무했던 직원이었다. 흔한 이름이고 직급이 예전과 달라 그 직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지방에서 근무했는데 그 직원이 서울에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알아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고 오래전 추억을 나누었다. 나는 그 직원과 대화하면서 가까운 지인조차 알아보기 어려운 이슬람 여성들이 복장이 생각났다.

 이슬람 여성이 입는 옷 중에서 히잡, 차도르, 니캅이라는 것이 있다. 히잡은 두건으로 머리와 목을 가려 얼굴만 보이고, 니캅은 눈만 보이고, 차도르는 눈조차도 망사로 가려 보이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우리들 모습이 꼭 니캅을 쓴 이슬람 여성처럼 낯설다. 

 사무실 직원이 60명이다. 복도에 마주치면 마스크 때문에 누군지 알 수가 없다. 사무실 같은 층에 다른 회사가 6개나 있으니, 화장실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입장이 곤란하다. 직장 동료인줄 알고 화장실에서 만난 사람에게 몇 번 인사했는데, 다른 회사 직원이었다. 사무실에서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민원실에 가면 나를 보고 어떻게 오셨는지 묻고 자리를 안내하기도 했다. 

 가족 중에서도 코로나 감염자가 있다. 아내와 아들은 감염 뒤 회복되었고 조카는 현재 격리 중이다. 며칠 전 아버지 생신이었는데 남동생 부부는 조카 때문에 여동생은 함께 식사한 직장동료가 확진되어 참석하지 못했다. 이번 아버지 생신에는 동네 어르신들까지 초대할 계획이었는데 고향마을에서도 확진자가 나와 단촐하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도 가정에도 고향에도 코로나 감염자가 많아 당분간은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만으로 사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가 발생한 지 2년이 넘었다. 초기에 비해 막연한 공포나 두려움은 사라졌다. 일반적으로 심한 감기 증세를 1주일 정도만 고생하면 회복된다고 하지만, 기저질환자나 고령자에게는 여전히 위험하다. 하루 3백 명 정도가 코로나로 안타깝게 사망하고 있으니 감염되지 않은 것이 최고의 방법이다. 코로나에서 벗어나 얼굴을 가리고 사는 세상에서 해방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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