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이잉~ 오오옴~ 국악관현악이 빚어내는 하모니는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한다. 웅혼한 선율은 이내 영혼마저 고요에 들게 한다. 백제 가요 ‘정읍사’를 관현악으로 연주한 수제천(壽齊天)이 전해주는 진한 감동이다. 필자만이 이 같이 느낀 게 아니다. 1973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민속음악경연대회 심사관들도 전율을 느끼며 수제천을 ‘천상의 소리’라고 극찬을 하며 대회 최고상인 그랑프리를 수여했다. 

  필자는 3월 18일 정읍사예술회관에서 열린 신춘음악회에서 수제천 연주를 듣게 됐다. 관현악 단원들은 이금섭 수제천보존회 감독의 지휘 아래 영혼의 소리를 연출했다. 장태연 교수는 오색 한복에 고운 자태를 뽐내며 무고를 춘다. 천상의 선율에 맞춰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가 되는 세계로 몰입하는 듯하다. 수제천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바로 천, 지, 인 삼위일체의 우주질서이다.

  수제천을 감상하는 사이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영적인 음악으로서 수제천과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정읍사’와의 괴리감이 바로 그것이다. ‘정읍사’는 백제시대에 행상을 나간 남편이 목적지에 잘 도착하고, 험한 곳에 들지 않고 무사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가사이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이라며 수제천을 높이 평가하는데 ‘정읍사’의 가사는 이에 조금 거리감이 있다.  

  필자가 전북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수제천 연구자료를 살피니 관련논문이 130여 건, 단행본이 17권에 이른다. 우리 전북이 모르는 사이 수제천 연구가 확발하게 진행된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읍사’의 노랫말과 수제천의 곡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풀 것인가? 지금까지 연구에서는 ‘정읍사’ 가사 풀이에 중점을 두고 곡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선행연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중앙대학교 송화섭 교수의 연구이다. 송화섭 교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등을 근거로 남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여인이 서 있던 망부석을 정읍시 농소동 천곡리 샘실마을 부엉바위로 지목했다. 

  단국대학교 임미선 교수는 ‘정읍사’가 백제의 노래로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무고정재의 반주음악으로 채택되고, 조선조를 거쳐 지금까지 내려오는 유구한 역사적 음악이라고 평가한다. 현재 ‘정읍사’를 노래하지 않는 기악곡의 형태로 그 곡명이 수제천으로 바뀌었지만 정읍은 궁중음악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꼽힌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은 수제천 곡의 원류이다. 필자는 ‘정읍사’의 주제를 행상 나간 남편의 안전을 기원하는 시각이 아니라 밖에 멀리 나가서 생업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노래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제안해본다. 그래야 궁중음악으로 채택된 연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읍사’의 무대는 백제시대에 가장 중요한 거점도시인 중방이 있었던 곳이다. 오늘날 고부를 중심으로 하는 중방은 고구려와 신라, 중국, 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들과 교류하던 국제도시이다. 또한 최치원이 밝힌 한국 사상의 원류인 현묘지도, 풍류의 원천이다. 그만큼 음악도 높은 수준으로 발달해 ‘정읍사’가 나오고 제례악으로  연주됐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싶다. 월인천강지곡에서 나오는 달빛이 천개의 강에서 밝은 달빛을 인장처럼 찍어주고 중생의 기도를 들어주는 것과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읍사’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달님이시여, 높이 좀 돋으시어 아아 멀리멀리 비추어 주십시오. 저자(시장)에 가 계십니까? 아아, 진흙땅을 디딜까 두렵습니다. 어느 곳에나 (마음을) 놓고 계십니까? 아아, 내 님이 가는 곳에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정읍사’의 가사는 조금 더 기도하는 차원으로 바뀌고 곡은 현묘지도의 웅혼함을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수제천보존회 장기철 이사장은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수제천의 원류를 정립하고, 수제천의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수제천은 파리 콘테스트에서 그랑프리를 받은 만큼 국제적으로 공인된 음악이다. 수제천으로 호남과 영남이 교류를 하며, 동양과 서양이 교류를 하기를 바란다. 수제천이 대한민국 대표 문화사절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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