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부중은 봄철이면 꽃 대궐 장관을 이룬다. 복사꽃, 살구꽃 분홍빛으로 전주부중이 물들어 완산도원(完山桃源)을 이룬다. 전주완산경찰서 바깥벽에 걸려 있는 큰 회화식 지도에 나타난 전주의 모습이다. 회화식 지도를 보면 무슨 생각이 떠오를까? 먼저 어릴 때 부르던 ‘고향의 봄’ 동요가 떠오른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그 가락을 타고 내 고향 전주가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그림 전주지도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풍을 보여주며,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주지도 진품은 보물 1586호로 지정돼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존되고 있다.  

  완산도원이라는 표현은 송화섭 중앙대학교 교수가 부친 이름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에서 따온 말이다.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 몽유도원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송화섭 교수는 복숭아꽃, 살구꽃으로 물든 전주부중을 도행방원(桃杏芳園)이라고도 부른다. 전주는 이처럼 양택만 꽃대궐을 이루는 게 아니라 음택 또한 꽃대궐을 이룬다. 전주의 진산인 건지산 일대는 복숭아꽃 오얏꽃으로 별천지이다. 도리방원(桃李芳園)이다. 건지산은 하늘 기운이 멈춰 서 있는 명당으로 전주 이씨와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조경단이 있는 곳이다. 도행방원, 도리방원은 선경세계(仙境世界)인 완산도원을 현실세계에서 완성하자는 것이다.

  건지산의 무릉도원은 대지동을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대지동에 도원이 조성된 것은 건지산 주봉이 도솔봉이기 때문이다. 도솔봉은 미륵보살이 좌정하고 있는 도솔천 내원궁의 상징이다. 이처럼 조경단은 음택으로 미륵상생세계를 구현하고, 전주부성은 양택으로 미륵하생세계의 실현을 꿈꾸는 곳이다. 완산지에 등장하는 사면 미륵불이 이를 설명한다. 동쪽 인봉리 용화사, 남쪽 장승백이 미륵암, 서쪽 만성동 천고사, 북쪽 진북사 미륵불이 주재하는 이유이다.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견훤대왕이 후백제를 세우고, 조선왕조가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창업과 포은 정몽주의 수성의 정신이 첨예하게 맞선 역사를 지니고 있다. 태조는 오목대에서 전주 이씨 종친들을 불러놓고 새로운 왕조 창업의 뜻을 드러내는 ‘대풍가’를 부른다. “큰 바람이 일고 구름은 높이 날아가네/위풍을 해내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사방을 지키지 않을 소냐.” 포은은 이에 비분강개해 남고산성에 올라 개경을 바라보고 우국시를 남겼다. “백년 호기는 서생의 신세를 그르치는 구나/해지는 하늘가에 뜬 구름 어우러지는데/고개 들어 물끄러미 옥경을 바라본다.”

  포은의 우국시는 남고산성 만경대 바위에 새겨져 그의 충심을 오늘까지 이어지게 한다. 17세기 전라도의 대표지성인 수졸재 류화는 화산의 황화대에 올라 오언절구 백12수로 전주의 선경세계를 노래한다. “봄 언덕은 봄비를 머금고/높은 대는 실바람을 이끄는데/정든 친구가 황화대에 오르니/성대한 우리의 모임 세속을 벗어난 것일세(春岸收新雨 高臺引細風 情朋來席上 勝會出塵中).” 이래서 기린토월(麒麟吐月), 한벽청연(寒碧晴煙), 남고모종(南固暮鍾), 동포귀범(東浦歸帆), 다가사후(多佳射帿), 덕진채련(德津採蓮), 비비락안(飛飛落雁), 위봉폭포(威鳳瀑布) 등 완산8경이 연출되는 게 아닌가? 달빛과 물안개, 은은한 저녁 종소리, 포구로 돌아오는 배, 활시위, 연꽃, 기러기, 폭포 등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전주는 산에 들에 꽃이 피며 아름다움을 더해간다. 시절에 따라 많은 전라도 지성인들이 전주찬가를 부르며 신바람 나는 이상세계를 실현하려고 했다. 전주천 청연루에서 물안개 피어오르는 선경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 삼례 비비정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붉게 스러져가는 인생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전주는 선경세계로 회화식 지도를 그릴 만큼 아름답고 청정한 도시이다. 이 같은 회화식 지도는 전주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자부심을 갖고 복사꽃 살구꽃 아름다운 완산도원을 지켜야 한다. 완산도원 선경세계는 전주인 스스로 가꾸고 지켜가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나만의 전주찬가를 지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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