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노에게 바란다

황석현(한국전기안전공사)

 출근길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은 직장인의 행복이다. 얼음 알갱이 사이로 빨대를 꽂아 커피를 빨아들이면 한껏 어우러진 쓴맛과 신맛이 입안을 산뜻하게 감돈다. 온몸을 스며드는 청량감은 적당량의 카페인과 함께 몸을 일깨운다.
 출근길을 함께하는 아메리카노가 지금처럼 보편화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프랜차이즈 커피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들어서던 2000년대 전까지 커피 시장은 믹스커피가 주름잡고 있었다. 그중에서 커피 자판기는 쉽게 믹스커피를 접할 수 있는 통로 중 하나였다.
 예전에는 슈퍼마켓이나 기업, 관공서에서 커피 자판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어느 자판기이든지‘밀크커피, 설탕커피, 코코아’가 기본메뉴로 있었다. 특이하게 스프가 메뉴에 있었던 곳도 있었다.

커피 자판기를 어렵사리 볼 수 있었던 학창 시절, 코코아와 스프를 주로 뽑아먹기도 했다. 요즘 청소년들은 길거리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스프의 감칠맛을 모를 것이다. 가격도 저렴해 200원이라는 비용으로 길거리에서 따스함과 여유를 선사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메리카노 전성기를 맞으며 커피 자판기는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어쩌다 보이는 자판기도캔커피 자판기가 전부다. 지나가는 거리에서 잠시의 여유를 주었던 커피 자판기는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뒤안길로 사라졌다.
 커피 자판기는 사라졌지만 믹스커피 시대는 계속 이어졌다. 프림과 설탕이 듬뿍 들어가 달짝지근한향과 맛을 내는 믹스커피는 몸에 그다지 좋지 않지만, 중독성이 있다. 자꾸만 손이 가는 중독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믹스커피는 커피 시장에서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는 커피라고 하면 사람들은 자연스레 아메리카노를 연상한다. 커피의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사무실에서 믹스커피 소비량도 현저히 줄었다. 출근하면 탕비실에서 믹스커피를 먹기 위해 모여 있던 광경은 보기 힘들게 되었다. 대신 젊은 직원들이 한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하는 광경이 익숙해지게되었다.
 한때는 믹스커피 마니아였던 나조차 자연스레 아메리카노를 먹고 있다. 바뀌는 트렌드에 적응하게 된것이다. 커피가 일상화되다 보니 주변에 ‘커피 소믈리에’라고 칭해도 좋을 정도로 원두 맛을 따지는이들도 늘어나게 되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카페가 편의점보다 많이 보인다. 유명한 커피 전문 브랜드에서부터 베이커리, 복권판매점도 카페라는 이름을 붙이고 쉼터를 표방하고 있다. 이제 아메리카노는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하나의 휴식 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문화로서 자리 잡은 아메리카노는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중매자 역할을톡톡히 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든 모임이 중단되어 만나기 힘들 때도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서로의 유대를 유지해왔다.
 아메리카노는 어느새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윤활제 역할을 도맡게 됐다. 직장에서도 젊은 직원들은 저녁 회식을 꺼리다 보니 점심때 아메리카노를 한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직장에서의 시름을 아메리카노 한 모금과 함께 넘기며 스트레스를 풀다 보니 ‘커피를 수혈’한다는 표현도 생기게 되었다. 직장인들에게 아메리카노는 수혈해야 할 생명수로서 위상을 굳히게 된 것이다.
 위드 코로나 전환으로 모임이 잦아지며 그간 소원해진 서로의 관계 회복을 위해 카페가 북적일 것이다. 다시금 끈끈한 관계를 회복하여 북적이던 활기찬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아메리카노가큰 역할을 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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