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이춘구의 세상이야기

황화대 칼럼-95 ‘다양성의 힘’, 쿤스트 서학

 

전주 한옥마을 건너편 당산나무 아래에서 행위예술이 펼쳐졌다. 서학동 갤러리길 입구에 길이 8m, 너비 2.5m 정도의 하얀 캔버스 위에서 가녀린 몸매의 화가가 온 몸으로 그림을 그렸다. 녹색 페인트를 뿌리고 캔버스를 옮겨 다니며 발로 점을 찍는다. 청색 페인트를 흩뿌리고, 빗자루를 붓 삼아 붉은색 페인트를 칠한다. 진달래색 연분홍 꽃잎을 날리듯 캔버스 곳곳을 장식한다.

30분 정도 이뤄진 행위예술 작품에서는 바람의 물결이 일어난다. 세파의 무거운 짐을 진 중생에게 그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바람을 담았다. 신록과 연분홍 진달래 꽃잎이 바람결에 흘러가더라. 바람은 보이지 않으면서 나름의 여백을 캔버스에 남겨둔다. 그래서 작가는 그 바람을 온 몸으로 담아내고 싶어 한 것 같다. 하늘에는 팔을 내밀며 전주, 대한민국, 지구촌 곳곳에서 살고 있는 모든 중생을 구제해달라고 서원을 세우는 듯하다. 번민으로부터의 자유, 온갖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신록으로부터의 생명, 연분홍으로부터의 꿈, 그리고 태양보다 더 붉은 생명의 풍요를 그려본다. 캔버스는 온통 바람의 염원을 담아내고 있다.

태양의 기운이 가장 강한 단오절에 서학동 갤러리길을 연 주인공은 행위예술가 배달래 화가이다. 배달래 화가의 퍼포먼스를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장식한 이는 남원출신의 유명 기타리스트 박석주 선생이다. 배달래 화가는 살풀이 시나위를 연출하기도 하고 좌선의 경지에 이르는 묵관을 드러내기도 한다. 살포시 걷는 걸음 속에서 모든 액운을 땅 속에 가둬두고, 가볍게 허공에 내뻗는 팔을 통해 중생의 서원을 도솔천에 걸어 두는 듯하다. 기타 가락을 타고 허공에 바람이 물결을 일으키는 듯하다. 캔버스는 점으로 선으로 면으로 4차원의 세계를 지향한다. 산조의 기타 음률은 더욱 더 저 깊은 바람의 세계로 중생을 빠져들게 한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최원철 전 전주대학교 부총장님과 임동욱 전주시중소기업인연합회 회장과 함께 배달래 선생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선생은 마음과 영혼을 담아 온 몸으로 작품을 펼쳐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동안 프랑스에서 소녀상을 주제로 행위예술을 하는 등 한국 화단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선생의 어릴 때 이름은 진달래였다. 이름 글자가 길어서 달래라고 했다. 사람은 이름대로 사는 것 같다.

가장 한국적인 이름과 한국적인 몸짓, 그리고 순수한 영혼을 담아내는 작품은 하나의 경전과 같다. 부처님께서 8만4천여 장경을 남긴 것처럼 전주에서 바람(Want)을 바람(Wind)에 담아 남긴 것이리라. 배달래 화가는 자신의 작품은 작품을 보는 모든 이의 것이라고 한다. 중생이 스스로 지은 바대로 살아가는 것처럼 예술작품 또한 보는 자의 시각과 보는 자의 바람에서 해석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배달래 선생의 퍼포먼스가 관객과 함께 하는 축제라면 서학동 갤러리길 미술축제는 공간적으로 당산나무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갤러리들에서 유명작가들의 초대전을 펼치고 있다. 박승환 전주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교수와 김성균 미술축제위원장 등 주최 측은 ‘다양성의 힘(The Power of Diversity)’, 쿤스트 서학 축제를 통해 갤러리 길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미술마을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이번 축제에는 남원출신의 유용상 화백의 와인잔 작품들을 비롯해 구상희 화백의 소외된 이면의 공간, 최수정 화백의 천년의 꽃, 이재갑 화백의 현대사 사진작품, 그리고 배달래 화백의 몽환적 작품들이 선을 보이고 있다.

마당에서 잡초를 뽑다가 최원철 부총장님의 제안으로 뜻밖에 눈 호사를 하게 된 필자로서는 많은 전주 시민이 서학동 갤러리 마을을 찾아 작품을 감상하기를 바란다. 전주시의 서배원 문화국장 등 관계자 여러분의 지원과 사랑으로 이번 축제가 성사됐다고 한다. 전주의 경우 아직 문화예술가들이 스스로 일어서서 이벤트를 하기에는 힘이 벅차다. 전주시와 전라북도 등 공공기관과 기업인들이 많이 도움을 주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향, 전주의 모습이 되살아 날 것이다. 필자는 전주의 품격을 알리려고 시조창을 불러주며 작은 정성이나마 다하려고 했다. 한옥마을 위에서 반짝이는 별처럼 전주의 꿈을, 전주의 바람을 온몸으로 그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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