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소리 평가하기 / 황석현(한국전기안전공사)

 사무실에서 다양한 전화를 받는다. 직원부터 외부고객까지 전화 받는 대상도 내용도 다양하다. 상대방이 누구든 전화를 친절히 받으려 노력하지만 가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는 경우 입장이 난처해지기도 한다.
 전화를 받다가 수화기 너머 내 목소리는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기에 톤은 괜찮은지 말투는 괜찮은지 궁금했다. 녹음하여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바쁜 일정에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어느 날, 대학원에서 문학작품 낭독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았다. 재학생이나 교직원 126명을 모집하여 현대 문학작품인 '무정'의 릴레이 낭독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한다는 것이었다.
 '무정'은 소설가 이광수가 1917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소설이다. 작가의 불명예스러운 이력을 작품과 별개로 놓고 봤을 때, 무정은 신소설의 과도기적 성격을 탈피한 최초의 본격적인 현대 장편소설로 평가된다. 조선 신문학의 중요한 주춧돌로 평가되는 작품이기에 국문과를 졸업한 내게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대학 유튜브를 확인해보니 이미 몇몇 분의 릴레이 콘텐츠가 제작되어 올라와 있었다.
 제작을 시작하면서 능력 좋은 학우들을 섭외해놓았던 것 같았다. 낭독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전문 성우 뺨치는 중저음의 목소리가 매력적인 학우부터 문학 행사에서 시 낭송을 여러 번 해본 것 같은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학우까지 다들 목소리의 수준이 뛰어났다.
 다들 어찌 그렇게 낭독을 잘하는지 감탄했다. 절제된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작중 상황에 맞는 감정을 실어 내는 기교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 비슷한 일반인 범주의 능력을 보여준 분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실력이 출중한 분들의 콘텐츠를 보니 장벽이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들어볼 수 있게 해줄 기회였기에 고민 끝에 지원서를 보냈다. 오래지 않아 녹음 스크립트와 함께 내게 안내 메일이 왔다.
 문제는 녹음하는 장소가 서울 본교 대학방송실이었다. 전주에서 근무하고 있어 서울에 가는 것이 여의찮아 다른 방도를 찾아봐야 했다. 그렇다고 사비를 들여 비싼 개인 녹음실을 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절충안으로 장비를 대여하여 집에서 녹음했다. 학교에는 양해를 구하고 직접 녹음한 파일을 보내주기로 했다. 아내와 아이가 잠을 청하러 간 사이에 방문을 닫아놓고 녹음을 진행했다. 역시 흡음 장비가 없는 일반 가정집에서의 녹음은 녹록지 않았다. 목소리 성량을 조금 올려도 좁은 방 안에 소리가 울렸다.
 몇 번 시도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리는 만무했다. 에코와 노이즈가 범벅된 결과물은 실망과 한숨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컴퓨터로 녹음한 파일의 보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소싯적에 유사 프로그램을 잠깐 사용해본 경험은 있지만, 보정이 잘 될까 하는 걱정이 되었다.
 그래도 참여하겠다고 했으니 결과물을 제출해야 했다. 보정 편집프로그램을 설치하고 노이즈를 줄이고 선명도를 높이려고 이리저리 옵션들을 눌러보았다. 분명 품질을 올릴 고급 기능이 있겠지만 단기간의 학습으로 알아낼 수 없었다. 기본 기능 내에서 세부 조정을 통해 최대한의 결과물을 얻어냈다.
 우여곡절 끝에 결과물을 제출하고 대학 유튜브 채널에 내 콘텐츠가 올라가게 되었다. 완성된 콘텐츠를 플레이하니 내 목소리를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내 목소리는 듣는 것은 생각보다 낯간지러운 일이었다. 들어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느끼한 것 같기도 했다. 거듭해서 들어보았지만 결국 내 목소리의 수준이 어떤지 답을 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목소리에 대해서는 고객들에게 평가 기회를 넘겨야 할 것 같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나보다 제 3자가 정확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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