皇華臺

이춘구의 세상이야기

 

황화대 칼럼-100 甄萱을 ‘진훤이라 불러다오!’ 고찰

 

전라도의 수도 전주가 후백제의 도성으로서 위상을 회복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산 넘어 산처럼 무수하다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 역사를 완성하는 차원에서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먼저 甄萱大王의 이름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부터 벽에 부딪친다.

甄萱大王을 지금까지 배운 대로 견훤대왕으로 읽어야 할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도학 교수가 해석하는 것처럼 진훤대왕으로 불러야 할지 의문이다. 이 문제는 새로운 학설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우리의 태도와도 연관되고 있다.

이도학 교수는 1998년에 펴낸 『진훤이라 불러다오』라는 저술에서 이미 甄萱의 우리 말 표기에 대해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옥편을 보면 ‘甄’에는 ‘견’과 ‘진’ 2가지 발음이 나온다. 『전운옥편』은 ‘성(姓)’으로 읽을 때는 ‘진’임을 명기했다. 조선 후기 사학자 홍여하와 안정복은 자신들이 저술한 『동사제강』과 『동사강목』에서 ‘甄’에 대한 음을 모두 ‘진(眞)’이라고 했다. 조선왕조가 편찬한 백과사전 『증보문헌비고』에서도 같은 기록을 남겼다. 『완산 견씨세보』에서도 ‘진훤’으로 읽었다.

현채가 지은 구한 말 국사교과서인 『유년필독』에도 ‘진훤’으로 표기했다. 김동인이 『조광(朝光)』에 연재한 소설 『제성대(帝城臺)』에서도 ‘진훤’이었다. 역사학자 이병도와 김상기, 문경현의 저작을 비롯해 민족문화추진회 국역본에 이르기까지 ‘진훤’으로 표기했다. 이도학 교수는 언제부터인지 교과서를 위시해 모두 “견훤”으로 표기하고 있다며 바로 잡을 것을 주장한다. 특히 근거 제시도 없고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진훤 이름은 구인교혼(蚯蚓交婚) 설화의 지렁이에서 유래한다. 용을 지렁이로 비하한 것이다.

전북대학교 도서관 자료실을 살핀 결과 이도학 교수는 진훤이라는 표기로 몇 차례 논문을 발표했다. 또 「연무읍 지역의 진훤전설 연구」 등에서 보는 것처럼 다른 연구자들도 진훤 표기를 따르고 있다. 이이화 선생은 2006년에 펴낸 『한국사』에서 「농민군 장군의 아들 진훤」, 「진훤과 경순왕의 투항」,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 편 등에서 진훤이라 표기했다. 후백제 역사를 바르게 세우고 후백제 왕경 복원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도학 교수는 2020년 국립전주박물관이 펴낸 『견훤, 새로운 시대를 열다』라는 책에서 「진훤과 후백제의 꿈과 영광」이라는 글을 발표한다. 이로써 이도학 교수의 생각은 분명해진다. 학문적 입장에서 자신이 세운 진훤 표기설을 견지하되 국립박물관 등이 취하는 일반적 표기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문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내용을 널리 공유하고 후백제 역사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 후백제 도성인 전주 시민, 완주 군민, 전북 도민부터 먼저 진훤왕이라고 부르는 시도부터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학문적 현상에 대해 늘 신축적으로 살펴야 한다. 이도학 교수는 자신의 접근법에 따라 결론을 내린 것이다. ‘진훤’설을 능가할 연구와 이론이 나온다면 그를 따르는 게 사상의 자유시장 이론에도 부합한다. 다윈의 진화론은 유기체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사상, 생각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어제의 진리가 오늘 허위로 판명될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악법임을 알면서도 독배를 마시며 죽음을 맞이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믿으면서도 살기 위해 천동설을 인정하고 단두대에서 내려온다. 과거의 잘못으로 현재, 더 나아가 미래가 어그러진다면 그 피해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진훤’설은 언론이나 사회단체, 정치계 등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는 게 바람직하다. ‘진훤’하면 지렁이가 아니라 용을 생각해야 한다. ‘진훤’하면 하늘을 뚫고 비상하는 용의 모습을 그리며 ‘진훤대왕’을 추모할 수 있어야 한다.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후백제학회 등이 인증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2021년부터 후백제역사 바르게 세우기 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진훤대왕’의 표준어진을 제작하고 후백제 왕경복원 등에 나설 방침이다. 어진전에서 표준어진을 대할 때 모든 참배객들이 ‘진훤대왕’을 추모하며, 나라의 통합과 자신의 성공을 기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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