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통치 형태로 보아 입헌군주제의 나라다. 1689년 제정된 권리장전이 영국을 입헌군주제의 나라로 규정했다. “군주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왕은 국가원수로서 상징적 지위에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왕이 완전히 허수아비는 아니다. 법적으로 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반이며 전군 최고 사령관이자 성공회의 수장이다. 왕은 또 의회를 소집, 해산하고 법안을 재가하며 총리와 주요 관리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한다. 하지만 이런 권한들은 모두 총리나 의회에 위임돼 있다. 총리와 의회의 요청이 있을 때만 발동될 수 있으니 있으나 마나한 권력인 셈이다. 그래도 왕의 이름 아래 왕국 정부가 조직돼 있다.
  그렇다면 영국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권력은 누가 쥐고 있을까. 영국은 의회주권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따라서 입법권을 쥔 의회가 거의 절대적이고 무한대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한다. 다른 정치기관들은 의회의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없다. 법원 역시 의회가 만든 법안을 심의할 수는 있으나 위헌 판결로 무효화 할 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
  이런 정치체제에서 실질적 권력 일인자는 물론 총리다. 총리는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이자 정부 수반이다. 총리는 의회다수당의 대표가 맡는다. 내각을 구성하는 장관과 부장관, 차관 등은 모두 총리가 임명한다. 영국 총리의 공식 직함도 꽤 길다. 우리 말로 하면 ‘영국 총리 겸 제1재무경 겸 국가공무원부 장관’이다. 
  이 막강한 영국 총리에 40대 여성이 선출됐다. 5일 집권당인 보수당은 새 대표로 리즈 트러스(47) 현 외무부장관을 선출했다. 트러스 총리는 ‘제2 철의 여인’으로 불린다. 그는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 러시아·중국에 대한 강경책 고수, 브렉시트 적극 옹호 등을 내세워 보수파 당원들의 지지를 얻었다.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같은 ‘친시장주의’ 색채가 강하다. 트러스 총리는 언론으로부터 ‘변신의 귀재’, ‘야망가’등으로 불리고 있다.
  사실 영국은 대처 총리 시절 아주 어려운 경제적 고비를 넘겼다. 1980년 집권한 대처는 영국병을 앓던 경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했다. 그녀에게는 신자유주의, 보수주의, 반공주의, 반노동조합주의 등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이번에 집권한 트러스 총리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지금 최악의 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낼지 관심사다.
  영국 총리에게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정확한 임기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 상황에 따라 언제든 그만두어야 하는 처지다. 따라서 국가 정책에 대한 영향력은 매우 커질 수도 있고 미미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트러스 총리는 제2의 대처가 될 수도 있고 그저 그런 총리로 끝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트러스 총리의 앞으로 행로가 어떻게 될 것인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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