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밤 9시 30분 전주지법 2호 법정 앞.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 2명을 데리고 인상을 찌푸린 채 담배를 피워대던 40대 남자가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울화통을 터뜨렸다.

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한 아내를 데리러 왔지만 쌀쌀한 날씨에 2시간 넘게 기다리다 짜증이 밀려온 것이었다.

그는 “(아내가) 아침 일찍 재판에 참석한다고 나갔는데, 아이들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유치치원이 끝난 애들을 퇴근 후 내가 데려왔다”며 “국민참여재판이 이렇게 힘든 것이냐”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도 한숨을 푹푹 내쉬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지난해 1월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이후 하루에만 10시간 넘게 이어지는 국민참여재판이 잇따르면서 ‘배심원 혹사’논란이 일고 있다.

물론 배심원은 도입 취지로만 본다면 생계 등을 접어두고 외부와 단절된 채 재판의 공정성을 위해 성실히 임해야 하는 것이지만 사실상 배심원의 영향력이 권고측면에 그치고 있는 우리나라에 보완 없이 무조건적인 혹사만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9일 전주지법등에 따르면 올 들어 도내에서는 모두 3번의 국민참여 재판이 열렸고 이중 2건이 하루 12시간이 넘게 재판이 진행됐다.

27일 있었던 국민참여 재판에서는 오전 9시 30분부터 밤 9시 30분까지 정확히 12시간이 걸렸고 지난 9월에 있었던 강도상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재판에서는 15시간이 소요됐다.

참여재판에서 최대 9명의 배심원(예비 2명 포함)들은 재판에 참여하면 참여비 10만원이 지급되지만 10시간 이상 걸리는 재판은 전문적으로 재판을 경험해보지 않은 법조인이 아닌 그들에게는 버겁기만 하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부에서는 ‘피고인이 재판 받는 것이 아닌 배심원이 재판 받는다’라는 말도 나오면서 하루재판이 아닌 속행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배심원으로 선정되면 사실상 일체 개인생활이 금지돼 격리 공동생활을 하며 재판에 임하며 속행으로 이뤄진다. 모든 비용은 법원이 부담한다.

이 같은 이유는 배심원들의 평의 및 평결은 선고결과와 직결되는 강제적 조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사정은 달라 배심원들의 평결은 권고적, 참고적 효력만 있다.

이 때문에 배심원들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데도 무조건적인 절차의 강요는 향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도내 법조계 한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시행하기 전 외국과 같이 배심원들을 격리하자는 조항을 두자는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권고적 효력만 있는 우리나라 배심원제도에서 그 같은 논의는 없는 것으로 됐고 현재 하루 재판 형식으로 참여재판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 재판부의 특성상 혹사 논란은 재판부의 ‘운영의 묘’ 문제다”라며 “만약 국민참여 재판 속행, 그에 따른 사법부적 비용 등의 세부적인 개선논의는 충분히 앞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백세종기자·103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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