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가 유산 문제로 갈등을 겪던 동생을 해코지한 60대 여성에게 선고유예를 내리면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해 눈길을 끈다.

전주지법 형사 제 2단독(부장판사 오영표)는 11일 동생 밭에 있던 차광막에 불을 붙인 혐의(재물손괴)로 기소된 A(60·여)씨에게 벌금 3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A 씨는 지난해 6월 20일 낮 12시 40분께 한 시골마을에 있던 동생의 밭 차광막에 불을 붙여 20만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낸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아버지의 유산 문제로 동생과 갈등을 겪다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오 판사는 판결문에서 요즘 시대의 안타까운 현실을 묘사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재산을 남긴 뜻은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일터인데, 남긴 재산이 많든 적든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 재산을 탐욕의 마음으로 취하려 한다면 고인의 뜻과는 달리 형제간의 우애나 부모·자식 간의 도리는 뒷전이고 추억한 싸움의 불씨가 되고 마는 것이 오늘날의 씁쓸한 풍경”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고인이 나이 든 누나로서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온 남은 어머니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고인인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며 물질에 눈이 어두워진 동생인 피해자를 나무라고 행동을 바로잡아주려는 심정에서 저지른 이 범행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정 스님의 ‘설해목’과 ‘무소유’를 인용하며 남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했다.

그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나무들을, 꿋꿋하게 고집하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을 꺾이게 하는 것은 끝이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가볍고 하얀 눈임을,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드는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임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 판사는 "이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피해액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법이 허용하지 않는 방법으로서 동생인 피해자에 대해 마지막 의사표현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피고인에 대한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끝을 맺었다./백세종기자·103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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